2024.06.03 (월)
그들은 죽었다. 그러면서 핏덩어리 생명을 떨쳐두었다. 아내의 뱃속에서 아직 햇빛을 보지 못 한 자신의 피붙이를, 태어나 있었지만 아직은 이 세상을 평화롭게 날갯짓할 수 없는 상태, 너무도 어린 아이를 버려둔 채, 아니 버려둘 수밖에 없는 채, 떠났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침묵과 함구로 비틀려진 세상을 바라보며 구천을 떠돌아다니고 있었을 목숨 그 많은 절명들! 그렇게 7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여수순천 10.19사건을 조망한 책들이 나오고 있다. 증언록을 시작으로 논문집, 소설집 등이다.
탄생도 죽음도 삶조차도 당신들이 손가락질한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야! 아무 죄 없이 죽었다고 했어! 그 어떤 죽음엔들 실오라기만한 이유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잖아?
하물며 그게 ‘밥 해준 죄’의 대가라고 한다면 그 어이없음에 대하여 거창하게 정의에 가깝진 않더라도, 상식선에서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밥’이 없다고, ‘밥’좀 나눠주라고, 아니면 총을 들이대며 ‘밥’ 아니 주면 죽여! 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죄로 당신을 끌고 가서 총살시켰다면.
2살이었던 아이가 72살, 엄마 뱃속 아이가 70살, 25살 꽃다운 새댁은 90을 넘어선 지금까지 그 피묻은 역사는 암흑 속에서 냉가슴을 앓고 살아왔다.
빛도 그림자도 아닌 통째로 눈물 밖에는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 한 채 명목(暝目)아닌 비참의 역설로 견뎌왔다.
사랑은 갈가리 찢겨 쌀 한 톨 진실된 관계의 그물 하나 지키지 못한 채 상처는 더욱 곪아 터지고 배고프고 억울하여 자존감은 댕강 잘린 하늘 아래 고개를 떨구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삶은 이미 ‘사랑’ 아닌 저주요 열망 아닌 포기요 밝음 아닌 동굴의 비밀이요 말할 수 있는 입 아닌 닫친 어처구니였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그들은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쓴다. <프리모 레비>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바로 기억이라는 고통이다. 의식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순간 사나운 개처럼 달려드는,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하는 잔인하고 오래된 고통이다. 그러면 나는 연필과 노트를 들고 아무에게도 말 할 수 없는 것을 쓴다.”--『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 216쪽/
여순연구소*가 그들의 입을 열게 했다면 공치사일까. 『여순10.19증언록』을 기획하며 그들의 충혈된 눈을 비로소 바라보고, 그날의 피맺힌 총소리와 함께 숨어버린 그 많은 목숨들을 너무나 늦게 호명했다.
그러나 어쨌든 그건 가까스로 막힌 역사의 혈관을 뚫는 과정이었다. 여순의 역사 속에서 비명에 간 이름들을 밝혀내고 단 한 마디도 할 말을 하지 못 했던 민초들의 억울한 죽음과 고통에 대하여 한 마디 한 마디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내려 가는 일은, 회상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결코 미뤄서는 안 될 우리의 사명이며 국가의 절대적인 책임과 의무인 것이다. 그 이후에 민주주의다. 그럼으로써 바로 세워질 역사이다.
그들은 말한다. 억울함에 대하여가 아닌, 죽음의 비극에 대하여가 아닌 현재적 삶의 문제를. 아직 밝혀지지 않고 아직 바로 세워지지 못 한 개인들의 한밤의 비명소리가 더 밝게 곧추 세워지기를 원한다. “명예”를 되찾는 일이 그들에게는 목숨처럼 소중한 일인 것이다.
하룻밤 사이 산목숨이 축 늘어진 죽음으로 떠밀려버린 그 운명 아닌 운명의 청천벽력을 이해하면서, “나 죄 없응께 괜찮을 거네” 했던 당신들에게 그날 그 사건은 죽을죄는 아니었다,
그건 ‘진정 억울한 사건이었다’라고 말해주는 일은 국가가 나서서 더 명료하게 실현해야 할 진상규명이다. 그 과정에서 화해 그리고 평화의 맨얼굴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정당한 보상과 배상을 실행하는 일 역시 오늘 우리가 국가가 할 일이다. 『여순10.19증언록 나 죄 없응께 괜찮을 거네』를 읽으면서 아직도 넘기지 못한 질긴 음식물 한 가닥이 목 언저리에 맴돌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제주의 4.3처럼, 광주의 5.18처럼, 아직도 진행 중인 한국현대사의 비극 국가폭력을 깊이 사죄하고 역사의 늪으로부터 여순 유족들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 주인공들은 죽어도 죽지 못한 어둠을 헤매고 있다. 죽음이란 모쪼록 무(無)이며 평안이거늘, 그들을 고요히 눈 감겨 이 역사의 왜곡된 치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또한 그 어린(아 지금은 늙어버린) 그들의 유족에게 심장 떨리는 억울함을 지체 없이 벗겨주어야 한다. 폭력집단이 아닌 평화의 보루로서의 국가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여순연구소: 10.19 여순사건을 역사의 진실에 근거하여 재조명하고 있는 국립순천대학교 부설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