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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란 무엇인가? (3)

기사입력 2016.11.1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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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이란 닻이며 돛이다. 어디에 닿아 삶의 뿌리를 내릴 것인가를 가늠하는 잣대의 시간이 인문학의 시간들이다.
     
    물론 생명체가 태어났을 때, 그곳이 최초의 닻을 내린 항구라 할 수 있지만, 인간의 삶은 한 곳에 뿌리를 내려서 영원히 그 뿌리의 근원대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수시로 우리는 자신의 삶의 뿌리를 내릴 곳을 고민한다. 

    그건 공간적인 뿌리내림이기도 하고 사상이나, 영혼의 뿌리를 내리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닻 내림의 시간은 선택의 시간이다. 

     선거를 통해서 보수 정치를 택하느냐 진보 정치를 택하느냐 하는 문제, 배움의 길에서 역사와 과학, 문학과 철학, 예술 등 스스로의 진로 문제를 택할 때에도 우리는 인문학적인 사고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인문학은 그러므로 생각이라는 경험치를 최대한 넓게 체험하는 과정인 것이다. 

    드넓어야 드높아진다. 드넓어야 깊어진다. 아무리 깊은 호수라 해도 바다를 넘어설 수 없고, 아무리 깊은 샘이라 해도 바다의 깊이에 닿을 수 없다. 

    여기에서 드넓다는 의미는 시공의 의미임과 동시에 끈질김을 가리키기도 한다.
     
    “끈질긴 인문학적 시간”들은 멀고 높은 세상을 자신 안에 체험하게 하여 닻을 내릴 곳, 뿌리 내림을 튼실하게 안내한다. 

     일단, 닻을 내린 생명들은 또다른 스스로의 돛을 달아야 한다.
     
    돛은 세상을 향한 바람이며 인간과 생명 본원을 향한 사랑의 빛이다. 

    내면을, 외향을, 외경으로 비추는 사랑의 길이 돛의 길이다. 

    개별적 삶도 궁극적으로 개별적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빛나는 돛을 펄럭일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은 가장 오랜 시간을 거쳐 그 빛을 잃지 않는 수단이다. 

    2천 년도 전에 달았던 ‘논어’라는 돛이 지금도 여전히 펄럭이고 있다. 

    그 시대에 돛을 달고 사상의 바다를 힘차게 출렁였던 소크라테스도, 노자도 역시 지금까지 그 돛의 빛을 잃지 않고 먼 해원을 저어 지구인들의 지혜를 드높이고 있다.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고, 하물며 문자도 없이 살았던 인디언 삶의 지혜마저 다른 수단 아닌 ‘책’을 통해 ‘도서관’에서 전해오기 때문에 21세기의 인류가 그 돛의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은 그리하여 아름다운 눈짓이 된다. 바다 멀리서 물결들의 속삭임을 싣고 온 돛단배를 내 안에 껴안고 그 빛을 안주 삼아 건네는 한 잔의 향기로운 술이다. 

    눈빛으로, 맛으로, 향기로, 촉감으로, 감미로운 목소리를 그 빛을 나누는 시간들이 인문학적 시간이다. 

    결코 형이상학적 추상이 아니다. 사상은 맛이 되고, 생각은 피부접촉으로 향기로운 입맞춤이 된다. 눈과 눈이 마주쳐 한 쌍의 흑두루미 날갯짓이 된다. 

    여름과 겨울이 한마당 가득히 빛을 나누며 조화롭게 온도를 조절한다. 추위도 더위도 더 지혜로운 체험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인문학적 인간들은 그리하여 특별한 계절 위에서 바람을 느낀다. 춥다던 사람은 따뜻해지고, 덥다던 사람은 시원해진다. 

    인문학은 조화의 바다다. 돛과 닻이 조화롭게 삶의 바다를 헤엄치게 하고, 쉬게 하듯이 우리는 뿌리 내려 쉬기도 하고, 날개 달고 날아가는 법의 길을 배운다.
     
    인문학의 시간들은 끊임없이 흔들리며 끊임없이 설레는 파도 위에 짓는 한 척의 행복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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