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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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두 마을에 미안한 시민들의 모임 대표 김종호씨인터뷰봉미를 아십니까.. 봉미를 찾습니다.더 많은 봉미가 생겨야 합니다. 봉두 마을에 미안한 시민들의 모임대표 김종호씨 ‘송전탑은… 아픔과 채찍이다. 미안합니다’3월 1일 전남 여수시 곳곳에 ‘미안합니다’라는 글씨가 크게 적힌 현수막이 긴 육교위에 매달렸다.도대체 뭐가 미안 한 걸까?궁금점을 찾다 보니 송전탑 건설로 인해 여수시 율촌면 봉두 마을을 알리기 위한 인터넷 DAUM 카페 봉두마을어르신께미안한사람들(아래 ‘봉미’)' 회원들이 현수막을 건 주인공 이었다.이들은 이날 이들은 여수와 여천시내 전역에 현수막 100개를 설치했다. 이른바 ‘현수막 시위’다. 송전탑 건설 문제로 전국에 이슈가 됐던 경남 밀양에 이어 여수도 송전탑 건설로 인해 여수시 율촌면 봉두 마을도 주민들과 한전의 갈등이 지속 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 이번 시위를 계획 했다고 한다.이들은 카페 회원과 지인들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모은 성금으로 현수막을 제작해 시내 전역에 게시했다.봉미 카페를 개설해 이번 시위를 이끌고 있는 김종호씨를 만났다.“여수 시민들이 봉두마을을 너무 몰라요. 안타갑죠 600년이 되는 전통 마을이 송전탑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남 여수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은 송전탑에 갇힌 심각한 동네인데 시민들 관심이 너무 부족합니다. 밀양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도와주는데 봉두마을 어르신들은 너무 힘들고 외롭게 싸우고 있어요. 봉두마을 송전탑 문제의 심각성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위를 계획했습니다”김씨의 말이다. 특별히 3.1절날 현수막 시위를 했습니다. 역사적 의미를 찾고자 했었나요?역사적인 의미를 찾기 보다는 많은 회원들이 참여 할 수 있고 주말을 맞아 외출을 계획 한 시민들이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또 이 현수막이 불법? 인지라 관련 공무원들의 단속을 피하면서 시내 곳곳에 적은 시민들에게 봉두 마을의 상황을 직접 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기도 하고요. 봉미라? 처음엔 무슨 사람을 찾는지 생각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모임을 만들게 된 배경을 말씀해 주신다면송전탑에 갇힌 봉두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그냥 바라만 봐서는 안돼겠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물론 일부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들과 그 회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대책 활동을 펴고 있지만 단체를 떠나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들에게 봉두마을의 아픔을 전 할 수 있을까 생각 하던 차에 ‘봉두마을어르신께미안한사람들’(봉미)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DAUM 카페를 개설해 네티즌들에게 봉두마을의 사연을 전했습니다. 회원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우리들의 모임을 구체화 하자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또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임을 겸하다 보니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고요. 이번시위를 계획했던 방법과 구체적인 활동을 말씀해 주신다면 ?일단 ‘봉미’ 카페 회원들에게 시위 목적을 알렸고 시민단체 홈페이지에 호소문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SNS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2월 8일부터 21일까지 단체 및 개인들에게 현수막 한 장 제작비용인 1만5000원을 모금했고요. ‘미안합니다’에 시위 참가자들이 문구를 보태게 했습니다. 또, 단체와 개인 이름 그리고 상호와 닉네임을 적어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현수막 게시 후에 사진을 찍어 보내면 시위 참가자들이 트위터, 페이스 등 SNS를 통해 자신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퍼 나르기로 했거든요.” 참가자들 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분이 있나요?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모임이 주를 이루다 보니 시위에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멀리 목포와 광주에서도 후원금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들에 늘 고맙죠 시민환경단체 관계자들도 대책위를 꾸리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 갈 전망입니다.그들 단체와의 연대는 계획하고 있는지요?그 문제를 놓고 회원들과의 많은 논의를 가진 결과 우리가 대책위 소속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현재 지금의 우리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자는 의견으로 통일 되었습니다. 물론 함께 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 있다면 할 수는 있어야죠. “그분들과의 통로는 열어 두되 소속단체로 편승되지는 말자”는 게 회원들의 생각입니다.앞으로 계획하신 일이나 하고픈 말이 있나요?신문에 광고지를 넣을 겁니다. 단 2~3명이라도 시간이 허락 된다면 출퇴근길 선전전을 펼 계획입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위해서 가칭 ‘봉두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걷기 대회’와 마을 주민들 후원을 위해 하루주점 같은 것을 마련코자 합니다.카페 회원들에게 또 한 번 신세져야죠.그리고 작은 우리들의 행동들로 인해 시민들의 관심이 불붙었으면 좋겠어요. 봉두마을에는 너무 관심이 없어요. 많은 ‘봉미’가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죠. 수백만 명의 ‘봉미’가 생기면 정부와 한전도 봉두마을을 함부로 손대지 못하겠죠” 한편 장흥 위씨, 광산 김씨 집성촌인 여수시 율촌 봉두마을은 1970년대 지어진 송전선로와 지난해 공사를 시작한 송전선로로 인해 한전과 갈등을 겪고 있다. 봉두마을 주민들은 “1970년대부터 있던 송전탑으로 인해 마을 주민 40명이 각종 암으로 돌아가셨고, 현재도 암·백혈병 등으로 7명이 투병 중”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지난 6일 최준식 한전 광주,전남지사장이 마을 방문했지만 주민들과의 별다른 합의점을 갖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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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균 관광 프로 듀서까치가 만난 사람“섬 주민들과 함께 관광모델 만들어 나가겠다”정태균 ‘관광두레 프로듀서’ 세계4대미항 여수시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새로운 관광모델을 제시하는 시범도시로 선정됐다. 이번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시행하는 ‘관광두레 프로듀서 및 사업’으로, 지역의 관광·문화 자원을 발굴해 주민들이 직접 사업체를 만들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다. 특히, 이 사업을 총괄하는 PD로 전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연구부장 출신인 정태균(39.남)씨가 선정돼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 씨는 뛰어난 기획력과 빈틈없는 업무처리 능력으로 지역사회에서 호평을 받아 온 인물로 여수 섬 지역 주민들과는 꾸준히 소통하며 인적네트워크를 다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태균씨를 만나 앞으로의 활동과 방향에 대해서 들어 봤다. 관광두레산업을 설명 해주자면 ? 관광두레사업의 목적은 지역 주민이 주도하여 관광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를 꾀하자는 데에 있습니다. 이는 관주도가 아닌 민간자율에 의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관광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는 거죠. 관광두레 PD는 숙박, 음식, 여행 알선, 운송 등의 서비스를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사업체의 창업을 돕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지역 관광에 대한 진단과 지역별 비즈니스 모델 구축, 사업계획 수립, 관광두레 기업 창업 멘토링, 주민 역량 강화 프로그램 등의 세부 사업들을 도맡아 추진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지역 여건을 잘아야 하고 지역 자원을 세밀히 파악해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이 있는 두레기업을 발굴할 수 있습니다. 현재 2013년 8월에는 경기 양평, 충북 제천 등 5개 시·군이 시범도시로 선정돼 사업을 전개해 오고 있으며, 전남에서는 여수를 비롯한 순천, 신안, 곡성 등 4개 도시가 선정돼 담당지역의 관광두레PD들이 3년 간 활동합니다. 여수의 관광의 비전이 있다면 살아있는 바다와 숨 쉬는 연안, 365개의 섬 등 천혜의 자원을 가지고 있는 곳이 여수 입니다. 그만큼 해양 관광의 중심도시로서 가지고 있는 위상이 크다고 봐야죠. 그 위상을 높이는데 있어서는 가장 필요한 게 섬 주민들과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분들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그분들을 통해서 끊임없는 명소가 개발되어야 합니다. 이미 잘알려진 금호도, 계도, 백야도, 안도 등을 보더라도 주민들의 역할이 크잖습니까! 각각의 섬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섬 문화를 보존하고 경관과 역사를 그 누구보다 더 잘아는 이들은 주민이지요. 게다가 풍부한 수산자원을 더하면 더 할 나위 없는 전국최고의 명소로 거듭 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수입니다. 여수의 관광을 알리는데 있어서 시급히 해결 해야 될 애로 상황이 있다면 주민과 소통 없는 난개발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는 현실에서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을 공동체가 주도 속으로 나설 있는 지속가능한 관광의 롤모델을 마련해야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 제공처가 구축이 되야 되는 거죠 그것을 제일 잘 알 수 있는 분들이 바로 섬에서 살고 계시는 주민들이라는 겁니다. 섬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인문학적 가치를 담아 접근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향을 제시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되는 거죠 물론 저가 부지런히 공부하고 움직여서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에서 활동 하는 등 독특한 이력을 지녔는데 특별히 관광두레 프로듀서에 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때를 잘 만났죠. 연구소에 있었을 때부터 주로 섬마을 주민들을 만나면서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남대 국동캠퍼스에 있는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공부를 계속 하다 보니 여수가 가지고 있는 이 독특한 섬 문화를 어떻게 하면 좀더 알려 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것을 어떻게 하면 섬 주민들과의 네트워크 형성을 이룰 수 있을까를 고민 하게 되던 중 문광부와 문화관광연구원에서 시행하는 이번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주변 분들도 권유를 해 관광프로듀서에 지원을 한 게 이처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관광프로듀서로서 활동 하실 때 중점에 두고자 하는 사업이 있다면 섬 주민들의 삶의 가치를 높여 내는데 있어서 조력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합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섬의 주인의 그 주민들이기에 그분들의 공동체적 삶을 훼손하거나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계절에 맞춰서 놀러가는 섬이 아니라 섬 주민 한분, 한분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섬 주변을 살펴 볼 수 있는데 조그만 힘이 됐으면 합니다. 여수 시민들을 비롯한 전국의 여행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수를 제대로 배우겠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여수를 찾아 주셨으면 합니다. 공정여행마인드라고 할까요. 그런 착한 여행으로 섬을 찾아 주시면서 어구를 손질하는 늙은 어부의 손길, 마치고 돌아가는 아낙의 모습을 보면서 배울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거기에서 힐링을 얻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관광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부대시설 하나 더 만들기 보다는 섬 주민들의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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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청소년 일시 보호쉼터 방준영 상담원모퉁이, 너머의 열린 공간에서 희망을 심어 주다.여수 청소년 일시 보호쉼터 방준영 상담원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아이들은 사랑을 나눌 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보호 받지 못 한 채 거리를 배회하거나 가출한 관내 청소년들을 보호 하는 여수시 청소년일시보호쉼터 방준영 상담원의 고뇌가 담긴 말이다. 지난 7일 여수시 청소년일시보호쉼터는 관내 거북선공원 일대에서 청소년들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가출, 배회 청소년들의 고민과 걱정을 함께 풀기 위해‘찾아가는 거리 상담’캠페인을 벌였다. 전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운영되는 여수시 봉산동에 위치한 청소년일시보호쉼터 상담원 방준영(31)씨를 만나 여수지역의 청소년들이 유해환경으로부터 어떻게 노출 되고 있는지와 그들의 실태를 들어봤다. “청소년의 가출은 부모의 이혼, 가정폭력, 학대, 방임이 그 원인입니다. 이는 자연스레 학교부적응으로 이어져 결국은 거리에서 방황하게끔 만들게 되죠. 이들이 갈 곳이 많지 않습니다. 저희 쉼터는 그 아이들을 만나서 상담하고 보호해 다시 집으로, 학교로 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방씨는 청소년일시보호쉼터에서 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수청소년일시보호쉼터의 역할과 현황을 말씀해주시죠? 지난해 7월 여수시로부터 YWCA가 위탁 받아 개소해 5명의 선생님들이 3조 2교대 근무를 통해 아이들을 보살펴 주며 365일 24시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주 대상은 9세~24세의 가출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방황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20세 이상은 가출 청소년으로 보기엔 어렵고 주 대상이 중-고생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초등학생들도 가출을 하는 입장인지라 더 어려운 처지죠. 이곳 봉산동에는 남학생이, 광무동 인근에는 여학생의 보호쉼터가 있습니다. 쉼터에서 생활 한 청소년은 몇 명 정도 되나요? =많은 아이들이 다녀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인적 상항을 기록해둔 자료를 근간으로 가출 재발을 막기 위해 항상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1년이 채 되지 않다 보니 아직 많은 아이들이 쉼터의 존재성을 알지 못 합니다. 그래서 많은 애를 먹고 있죠. 경찰 관계자나 교육청등 관계기관을 통해 저희에게 보내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쉼터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 해 밤10시 이전까지는 PC방에서 보내다가 건물 화장실이나, 공원에서 자거나 늦은 밤 인근 교회에 몰래 들어가서 자고 나오는 아이들의 사례도 있었습니다. 일부 남학생의 경우는 갈 곳을 정하지 못 할 경우 한 밤중에 주차 된 차량을 털기도 했다는 말을 상담과정에서 듣기도 했습니다. 여학생 의 경우는 더 위험한 경우에 처할 뻔 했던 사연도 있고요. 때문에 저희들이 거리 상담을 통해 아이들을 찾기도 하고 관내 학교 상담교사와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WEE센터(학교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어려움을 지역사회의 적, 물적, 인프라를 활용하여 진단-상담-치료를 서비스하는 원스톱 상담 센터)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 쉼터로 인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처음 찾은 청소년들의 상태를 말씀 해주신다면? 꿈도, 미래도 고민 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대다수가 한 부모 가정의 자녀인데다 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심리상태가 컸죠. 열악한 가정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 예컨대 만취 상태인 아버지가 휘두른 폭력 이라든가, 무관심 심지어는 객지에 있으면서 아이를 친척집에 아이를 맡겨두고 단순히 생활비만 보내주다 보니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를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죠. 그러다 보니 천덕꾸러기로 치부 받아 상처받은 아이들도 있었죠.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 아이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수만 하더라도 벌써 초등학생이 가출을 해 저희와 생활 했습니다. 쉼터에 온 아이들은 어떤 생활을 합니까 ? 이곳을 찾는 아이들에게는 그냥 편히 쉬게끔 해줍니다. 구속당한다는 느낌을 전혀 줘서는 안돼요. 5명의 상담 선생님들이 3조2교대로 24시간 같이 생활 하면서 아이들의 식사와 샤워, 세탁, 폭력에 따른 응급치료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기타 교습,PC활용,TV시청,독서,보드게임 등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밖에서 방황 하는 것 보다는 이곳에서 맘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 해주고 있죠. 그리고 침실도 마련돼 집에 들어가기 꺼려하는 아이들은 일단 이곳에서 생활 하게끔 합니다. 일주일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아이들이 차즘, 차즘 마음의 문을 열죠. 그리고 적당 한 시기에 심리상담 등을 통해 아이들을 진단합니다. 그리고 학교교사, 학부모들을 만나 집과 학교로 복귀 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해줍니다. 또 그 아이들이 언제든 이곳을 이용 할 수 있도록 하죠. 밖에서 배회 하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요. 실제로 집과 학교는 가되 이곳에서 주말을 보내거나 방과 후 쉼터를 찾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청소년일시보호쉼터라고 했습니다. 다른 보호쉼터도 있나요? 청소년보호쉼터는 크게 일시보호쉼터, 단기보호쉼터, 중장기보호쉼터가 있습니다. 일시보호쉼터는 1주일을 머물 되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단기보호쉼터는 3개월, 중장기보호쉼터는 2년까지 머물 수 있습니다. 전남 목포에 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중장기보호쉼터가 있습니다. 일시보호쉼터에서 1주일을 머물다가 타 기관으로가 좀 더 장기적인 상담진료를 받는 사례도 있습니다. 일시보호쉼터와 단기보호쉼터의 경우는 남녀 학생들이 함께 보내고 있고 중장기의 경우는 남,여 학생이 다른 보호쉼터에서 생활 하며 검정고시를 통한 학업연결과 직업체험교육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응 등을 준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보호쉼터를 운영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나요? 현재 일시보호쉼터는 전남에서는 여수가 유일해 적은 인원수의 선생님들이 인근 순천, 광양까지 아이들을 찾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죠. 게다가 타 지역에는 일시보호쉼터의 경우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건물 층 수 는 다르지만 한 건물 안에서 생활하면서 담당 선생님들이 남, 여 학생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쉽게 만나지만 여수는 서로 떨어져 생활 하는 터라 어려운 점 이 많죠. 시비와 도비의 지원금도 많이 부족한 것도 문제입니다. 사회복지 분야의 지원금들이 대부분 큰 복지관으로 많이 쏠려 중소형 복지 시설이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이 한계에 놓여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이들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는데 지금의 환경으로서는 많이 벅 찰 때가 있습니다. 또 뜻있는 시민들이 함께 해주시면 좋을 텐데 자원봉사자 수도 턱없이 부족하죠. 현재 계획되거나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지요? 매주 수요일은 각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을 상담 할 계획입니다. 학교 상담교사와 학생주임 선생님들이 연계 해준 아이들을 만나 저희가 보호할 수 있다면 서로의 협조를 통해 보호 할 생각입니다. 또 금요일에는 거북선 공원을 비롯해 이순신광장 등 청소년 밀집지역을 직접 찾아 심리검사 및, 상담서비스를 펼치고 먹거리를 제공 하는 한편 휴대폰 충전과 응급진료도 병행토록 할 것입니다. 또 가출여부가 확실하면 쉼터와 연계할 예정에 있으며, 인근 지구대등의 협조를 얻어 청소년사각지대에서 아이들을 보호 하는 활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끝으로 쉼터를 통해 지역 청소년들이나 시민들께 한 말씀 해주시죠? 어린 나이에 사회속에서 겪게 될 각종 비행의 유혹과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그들만의 고민과 걱정을 함께 풀어가는 작은 언덕이자 희망이 되고자 합니다. 또 여수시 청소년일시보호쉼터에 관심 있는 시민들과 청소년들은 인터넷 DAUM 카페 http://cafe.daum.net/yeosushimer 로 접속하거나 061)644-0918로 연락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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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마을 희망지기<섬마을 희망지기>“섬사람들 발을 묶을 수도 없고”33년을 이렇게 살아 왔지요. 섬달천과 여자도를 오간 나룻배 선장 김재학 생활을 육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섬에서 배는 필수품이다. 배는 생계유지 수단인 동시에 섬과 섬을 오가는 운송수단이다. 이런 의미에서 배는 섬사람에게 있어 ‘생활’ 혹은 ‘삶’ 그 자체다. 섬사람들의 발인 배. 그 역할을 하는 나룻배에는 어떤 애환들이 숨어 있을까?김재학 씨는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섬달천과 여자도를 하루에 4번씩 오가는 '새마을호'와 '금진호'의 선장이다. 고향 사람들의 유일한 다리가 되어온 지 33년. 섬에서 태어나 15살 어린 나이에 집배원을 시작했던 그는 섬과 뭍을 잇는 여객선 운항이 끊기자, 마을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새마을호'와 금진호 키를 잡았다. 150여 가구. 여자도 사람들의 생사고락을 함께 싣고 달리며 고향마을을 지키는 등대가 되다 이제는 배에서 내려 평온한 삶? 을 살게 되는 김재학 선장을 만났다. 이제는 배에서 내려 주민들과의 작별? 합니다. 그동안의 소회를 말씀해 주신다면 젊은 나이 때부터 이 배를 잡았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 그 집 밥 수저가 몇 개인지 나가 더 알아 부러요 글다 봉께 뭍으로 나 갈 때는 어~이 김 선장 울 집에 뭐가 떨어 져 없는디 좀 사다 주시오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완전 동네 심부름꾼 노릇을 33년 한 거제 게다가 이 배 라는 게 시간을 맞춰야 하다 보니 집안 애경사는 물론이고 아파도 아프다는 소릴 못하고 살아 왔죠. 바람 불고 태풍 온다는 소리 빼고는 이 키를 놔 둔 적이 없소 그래야 사람들을 싣고 가는 거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그는 말 그대로 천상 동네 아저씨 였다. 이 일을 언제부터 하게 됐습니까? “나가 열다섯부터 집배원을 하다가 이걸 하게 돼쓴께 올 해로 33년 됐지요잉. 마을서 없던 도선을 처음 맨들 때 여러 사람이 이거슬 헐라고 그랬는디 (여자도) 주민덜이 (집배원 하느라) 고생했다고 추천합디다. 집배원 헐 때 국장 헌티 헌 말이 이 여자도 주민들 뱃길 끊기면 이 편지 부텀 해서 이것, 저것 제 때 못 갔다 주면 얼매나 속 쓰리 겄냐고 말했는데 주민들이 그 걸 듣고는 주민들이 서로 나서서 추천을 하고 그 와중에 도선사 시험쳐서 합격 하고 배를 몰게 됐지요. 그래서 하게 됐소. 그리고 우편 배달부 좋은 말로 하면 집배원 이라고 하잖아요 그걸 지금은 울 마누라 이름이 김점옥 인디 여수우체국에서 나 대신 집사람을 집배원으로 써줘서 마누라가 허요” 동네 일을 두 부부께서 다 도맡아 하시는 군요 어려움이 많겠네요?” “사람이 줄어 손님이 준께 어렵지. 해경에선 다른 데 같이 요금을 오천원 이상으로 올리라고 헌디, 뻔히 아는 사정에 올리기가 어디 쉽소. 글고 기름값 올라가지 만이(많이) 어렵지. 옛날에는 그래도 주민들이 면세유를 쪼끔씩 나눠 줘 그럭저럭 헐 수 있었는디 하루 오회 운행에 이백 리터 쓴께 이십 사만원이 드요. 열두 명 정원으로 이 벌이가 되것쏘. 그러다 배가 고장 나불믄 수리해야 되고 큰 돈 들어 가 불믄, 타산이 안 맞아 부러요. 그렇게 버틴게 33년요 지금은 여수의 대표적 관광지로 떠오르는 섬달천과 여자도 그 뱃길을 지켜오면서 동네의 소식통이 되어온 김재학 선장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변덕을 부리는 바다 날씨 속에서도 매일 40여분의 뱃길을 오가는 일을 쉬어본적이 없었다. 그는 과거 담석증으로 큰 수술을 하고도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새마을호는 섬사람들의 이삿짐을 나르는 화물차가 되기도 하고 응급환자를 호송하는 구급차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든 아픔과 즐거움 등 많은 애환을 갖고 살겠지만, 어려운 판에도 서글서글 말하는 김재학 선장이 다시 보인다. 그의 이런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바다 사나이라서 넓은 가슴을 가졌기 때문에? 아님 욕심을 버렸기 때문에? 그는 지난 3일을 끝으로 그동안 자신의 몸과 같던 새마을호와 금진호에서 내려왔다. 한편 섬달천과 여자도를 잇는 뱃길은 이 지역 어촌계에서 맡게 됐다. 그들이 김재학 선장의 33년의 그 삶을 잘 이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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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모"를 아시나요 꽃을 사랑하는 가족 봉사모임지난주 여수 하화도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여수 꽃사모회원들이 하화도 둘레길 주변에 관광객들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적을 있도록나무목을 제작해 설치한 것.이들은 하화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다녀간 흔적이나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나 자신들의 느낌을 적을 수 있도록 자비를 털어 제작했다.꽃사모는 뿐만 아니라 하화도 주변에 구절초를 비롯해 부채손을 직접 식재하고 가꾸는 등 말그대로 꽃섬인 하화도를 가꾸고 있는 것이다.이 역시 외부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받지 않고 회원들의 순수 회비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꽃사모가 처음 생긴 것은 지난 2007년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봉사라는 고리를 연결해 지역의 꽃길을 조성하기 시작 했다.이들은 거북공원을 비롯한, 여문공원, 성산공원 등 지역민들의 산책코스로 알려진 곳을 중심으로 야생화를 심기 시작 한 것으로 해 지금까지 꾸준히 꽃길 가꾸기를 비롯해 경로당 위문 방문, 낙도지역민들을 위한 영화상영 까지 다양한 봉사활동 펴오면서 외부에 알리지 않고 봉사활동을 진행해 왔다.꽃사모의 회원은 현재 약 80여명으로 이뤄져 있다.이들이 하화도를 가꾸기는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한 이가 꽃사모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박근호 씨의 열정이 있었다.꽃섬이라 불리는 섬이라는 데 꽃은 보이질 않았지요.그가 하화도를 처음 찾았을 때의 처음 느꼈던 말이다.박근호 씨가 처음 하화도를 찾았을 당시를 들어 봤다.“내가 처음으로 꽃섬을 왔을 때 는 2003년 적십자 무선봉사회에서 낙도봉사를 와서 처음으로 보았죠. 그 당시에는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저 조그마한 어촌마을이었습니다.그 뒤로는 2007년 도서간이매립장 실태조사를 위한 방문과 2012년 여수환경연합에서 회원들과 함께 생태기행을 하면서 하화도를 본격적으로 찾았습니다. 그리곤 지난해는 여수꽃사모 회원들과 야유회를 왔고 직장 직원들과 나들이 찾았는데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멋진 이 섬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생각했던 부분은 꽃섬이라 불리는데 실제적으로 야생화같은 꽃은 별로 없다는 게 아쉬운 나머지 몇 가지 제안을 인터넷을 통해 시청 민원실에 올렸습니다.게다가 일부 몰지각한 관광객들이 부채손이나 구절초가 몸에 좋다하여 무분별하게 채취하는 모습이나 주변이 청결치 못한 부분들을 건의하면서 변화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의 행정력이 필요 하다는 것이군요?=그래서 내가 나서서 행동해 보기로 하였습니다.시청을 찾아가서 시장님의 단독 면담을 신청해 꽃섬의 문제점과 함께 야생화 섬으로 가꾸기 위한 몇 가지의 건의를 드렸죠. 그게 지난해입니다.시장님께선 그렇잖아도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기왕 하시는 일이라면 꽃사모 같은 순수 민간 봉사단체에서 자발적으로 꽃을 심어주길 부탁하는 겁니다. (웃음)시장님의 간곡한 부탁도 있는데다 당시의 무심한 시 행정력을 보면서 씁쓸했습니다.한 참을 고민 하던 끝에 결단을 내리고 회원들을 만났습니다.우리모임은 도심공원 꽃밭을 가꾸는 것이며 다들 바쁜 직장인인데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회원들에게 의견을 했더니 다들 긍정적으로 좋게 받아주었습니다. 회원들의 의지도 대단 하십니다.=본격적으로 야생화 꽃씨를 채취하기 위해 돌산이나 주변 섬으로 돌아다니면서 쑥부쟁이를 비롯해 구절초등의 씨앗을 받아서 보관했죠.또 보관이 쉽지 않아 농업기술센터에 의뢰해 씨앗 보관을 부탁했죠.그렇게 하다 보니 지난 3월 13일에 육묘장에서 씨앗을 직접 회원들이 심었고 결과는 예상외로 씨앗이 좋아 성장도 빨랐습니다.쑥부쟁이, 구절초, 나팔꽃을 심기로 했습니다.주종은 쑥부쟁이이며 구절초는 시에서도 고급종을 들여와서 관리 중이었습니다.하지만 아쉽게도 여수시가 사들여온 구절초는 우리의 것이 아닌 외래 고급종 이었죠.씁쓸했습니다. 섬에 가서 보면 알겠지만 일주일 간격으로 똑같은 조건에 맞춰 심은 구절초가시에서 사들여 온 외래종 보다 꽃사모가 애써 찾은 우리의 전통 모종이 2배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육묘장에서부터 심은 지 한 달 정도 되는 시점에 가서보니 벌써 이식해야할 시기가 넘어가니담당자조차도 그렇게 빠르게 성장 할 줄 생각지 못했다며 얼른 모종을 현장에 옮겨 심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해 시청 관광과 담당팀장님을 급히 찾았습니다.하화도에 장소와 인원을 모집해주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였습니다.우리 꽃사모가 섬을에가서 심기는 하겠지만 그 많은 종을 회원들의 힘으로 감당키는 어렵겠다. 마을 내 어르신들을 공공근로 등을 통한 인력 수급이 필요 하다고 건의를 드렸습니다.하지만 시는 예산이 없다고 해 상당한 고민이 들었죠.다행이도 하화도에서 목회를 하시는 김영구 목사님이 꽃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소릴 듣곤 목사님을 찾아 만났죠. 그리고 지난 2일 회원들과 현장을 찾았고 목사님과도 심을 곳을 비롯해 진행 과정 계획을 나눴습니다.꽃섬(하화도)을 위해 그 노고가 얼마나 고마운 분인지 이날은 14판(72칸 X 10)1000개 일부만 가져갔으며 직접 회원들이 심었습니다.그리고 지난 10일 회원들과 하화도를 찾았습니다. 목사님과 어르신들이 오셔서 작업 중 이더군요.잡초제거하고 꽃밭을 조성하는 바쁜 손놀림으로 평생을 농사로 하신 탓에 어르신들이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연세는 많으셔도 일하는 데는 이분들의 능력을 따라갈 수는 없죠. (웃음)꽃사모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준비해간 간식(떡 김밥 음료등)을 어르신과 함께 먹으면서 꽃섬을 아름답게 가꾸어보자며 다짐했죠. 희망 메시지 나무목은 이 때 설치 되 것 인가요 ?이날 그 유명한? 희망 메시지 나무목을 200개 정도 준비해가 둘레길에 설치했죠.관광객 등 방문객 누구나 좋은 글을 비롯해 방문 소감을 써서 다시 찾고 싶은 꽃섬으로 만들기 위한 바람으로 말이죠.앞으로 희망메시지의 반응이 좋을 경우 섬전체가 나무목으로 걸릴 수 있도록 꽃사모에서 제공할 것입니다.희망솟대로 쓰였던 나무 받침목이 이제는 희망의 바다로 변할 것입니다.야생화 또한 회원들이 더 많은 곳으로 환하게 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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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스쿠버회“해양관광도시 여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깨끗한 바다를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그래서 오늘 저희들이 나선 것이죠”LG화학 스쿠버회 총무를 맡고 있는 이성원 씨의 말이다.지난 24일 여수 하멜해양공원을 일대 바닷가에서는 LG화학 스킨스쿠버 동호회 회원들과 여수 환경운동연합, 꽃사모 (꽃을 사랑하는 가족 봉사 모임)회원들이 한데 모였다.이들은 바다 생태계 파괴의 주범인 불가사리 제거와 함께 바다속에 버려진 각종 쓰레기들을 수거하는 정화 활동을 펼쳤다.이 자리서 스쿠버회 총무를 맡고 있는 LG 화학 정비1팀 (정비지원 4실) 이성원 계장을 만났다. 스쿠버 동호회의 결성 과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 스쿠버 동오회는 1994년에 결성했습니다. 처음에는 레져활동으로 바다를 좋아하는 사원들이 모여 들어 정규과정의 교육을 받으며 스쿠버를 시작했죠.즐기다 보니 보다 바다 속 환경이 엉망인거에요. 레저라는게 즐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기왕 즐길 일이라면 보람되는 것을 찾아보자 하고 시작한 게 수중정화 활동이 됐죠. 주변 어민들과의 갈등도 있었을 텐데요=어촌계 관계자들과도 많은 갈등이 있었죠. 오늘 봤겠지만 수중에 버려진 생활폐기물을 버리는 분들이 80%가 어민들입니다. 그 분들이 어로 활동을 하면서 버리는 쓰레기들이 많습니다.그래서 계도? 차원에서 몇 마디를 전하다 보면 싸움으로 번지는 곡절도 있었죠.어민들이 오해를 하시는 경우죠예컨대 저희들이 정화 활동을 하면서 간혹 전복. 멍게, 해삼들이 한- 두 개 정도 같이 걸려 옵니다.그것을 본 일부 어민들이 자신들의 양식장을 침범한 것처럼 몰아붙이는 거죠.그 때가 가장 난감합니다. 회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이런 소릴 들어가면서 봉사활동을 해야 되냐는 불만이 담긴 소리도 나왔죠.지금은 어촌계 관계자분들과 연락을 취한 후 정화 활동을 펼치기도 하고 사전에 그쪽 분들이 먼저 연락을 주면서 바다 청소를 부탁하기도 하죠. 산단에 있다 보니 교대 근무 시간 때를 맞춰 여건이 되는 회원들이 주로 가죠. 오늘도 교대 근무시간 때에 맞는 회원들이 모인 겁니다. 특별히 불가사리 제거에 열을 올리시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불가사리는 어종 황폐화의 주범입니다. 특히 오늘 가장 많이 제거한 아무르 불가사리는 러시아 연안 쪽에서 나오는 불가사리 인데 지금은 우리나라 바다 곳곳에서 등장 합니다.토종 불가사리도 어족을 망치지만 이 아무르불가사리는 더욱 우리 바다 생태계를 망치는 것 이어서 골칫거리로 어민들에게도 큰 걱정거리입니다. 스쿠버회가 정기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까저희들은 매월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번에는 신월동 앞 바다에서 정화 활동을 했습니다. 또 매년 대회를 펼쳐 누가 가장 많은 불가사리를 잡았느냐를 하죠.물론 봉사차원에서 하기 때문에 상품 욕심에 나서는 것 보다는 봉사의 열정을 더 가미하자는 의미에서 하다 보니 경쟁심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 어민들도 흡족하시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여수는 삼면이 바다로 이뤄져있습니다. 365개의 섬 그리고 그곳에서 생계를 이끌어 가는 어민들 저희는 바닷가 주변에서 사시는 어민들의 요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물속으로 갈 것입니다. 그게 저희들을 즐겁게 하는 거죠. 레저를 넘어 봉사와 바다생태계를 지키는 일이니까요.이날 이들은 불가사리 제거와 더불어 바다 안에 버려진 생활쓰레기를 수거 한 뒤 여수시 관계자들에게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