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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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도의 설시(舌詩)와 결혼식장에서의 말 실수김상훈 수필가 결혼식은 신랑 신부와 그 가족에게 더할 나위 없는 경사입니다. 당사자들은 온몸이 설레고 주례선생님의 말 한마디에도 가슴에 오롯이 새겨지고 자리매김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식장 안에 운집해 있는 수많은 하객의 축복 속에 자기 인생의 반려자를 맞이하는 그 시간만큼은 정말 본인 생애 최고의 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객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쩌면 이보다 따분하고 지루한 연극은 없습니다. 이 연극은 수십 번 보아왔던 터라 너무나 익숙해진 것이어서, 줄거리는 처음부터 익히 알고 있고,어떤 클라이맥스도 극적인 반전도 없는 그런 평범한 드라마일 뿐입니다. 그래서 따분함을 이기지 못한 몇몇 이웃들은 이렇게 말해 버리는 실수를 범하곤 합니다. "신랑이(또는 신부가)기우는 것 같지 않아?“ "주례사가 너무 길어!좀 짧고 간결하게 할 수 없을까?“ "이 예식장 뷔페는 정말 맛이 없더라고?“ "신부가 너무 뚱뚱하다 응?“ 이런 유의 말을 별생각 없이 했다간 크게 뒤틀릴 수가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근육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이 혀라는 말도 있습니다. 더불어 혀는 뼈가 없으나 뼈를 녹일 수 있는 강한 독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일단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이라면 절대로 오해가 될 수 있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축하하려고 온 이상 설령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있더라도 입을 다물거나 덕담만 해야 함은 물론이고요. 만일 실담을 했다면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덕 잃고, 돈 잃고, 신뢰마저 잃고 마는 바보 삼 종 세트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결혼식에 갈 때는 좋은 말만 하는 연습이라도 미리 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벽에도 귀가 있다"라는 말을 항시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말한 사람은 물론이요,듣고 전하는 사람,그 전하는 말을 듣는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또 전달,이렇게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말의 오고 감이 엄청난 오해를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결혼식 하객들에게 저 연산군 시절의 신언패(愼言牌)를 일일이 달 수도 없는 노릇인데 마침 기억에 번쩍 들어오는 한 구절의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입은 재앙을 불러오는 문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감추면 안신처처뢰(安身處處牢)가는 곳마다 몸이 안전하리라. 후 당(後唐)시대에 활동했던 중국의5대 정치가 중의 한 명으로 알려진5왕조11명의 황제를30년 동안 섬겼던 처세의 달인 재상,풍도(馮道) (882~954)가 쓴 설시(舌詩)입니다.설명이 필요 없이 한마디로 혀를 조심하라는 얘기입니다. 며칠 전 제 주변 지인의 결혼식에서 말 한마디 때문에 사이가 좋았던 두 집안이 상당히 복잡한 관계로 변해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속히 시간을 내서 두 가족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타이밍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감정이 뒤틀려 버린 한쪽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악의적인 말도 아닌 것 같은데 안타깝기가 그지없습니다. 최근 대통령의 해외 순방 시‘이XX들’이니‘날리면’등으로 여야가 그야말로 말 때문에 치졸하고 조악한 말싸움을 하면서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더니 급기야는 핼러윈인지 헬로원인지 발음하기조차 해괴한 외국문물의 모방 축제로158명의 생때같은 우리 젊은이들이 압사한 대형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책임진다거나 사과하는 말을 하는 지도자나 정치가는 없고 내 탓이 아니고 모두 네 탓이라고만 주구장창 우기고 있으니 국민의 피곤함만 가중되고 더불어 그 고통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말의 속성상 할 말은 꼭 하고 아니할 말은 기꺼이 하지 않아야 하는데 너도나도 청개구리의 화신인지 할 말은 죽어도 아니하고 아니 할 말은 기어코 해 버리는 것이 작금의 정치 상황이니 이 사람은 도무지 해법을 찾을 수가 없어서 답답합니다. 49제가 지난 오늘까지도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정부나 정치권 모두에게 분발을 촉구합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말입니다. 이번에 결혼식장에서 맨 처음 음식의 맛을 가지고 별다른 생각없이 불쑥했던 말이 정말 잘못됐노라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되는데 이 오지랖의 소월정 주인이 한 번 능력을 발휘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쾌청해진 날씨처럼 두 가족이 옛날보다 더 좋아진 이웃으로 거듭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아울러 경찰서장이든 청장이든 구청장이든 서울시장이든 행안부 장관이든 더 나아가 총리든 정말 책임 있는 사람의 명쾌한 사고 경위와 이에 합당하는 공개사과가 있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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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의 길과 회춘탕김상훈 수필가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걷는 길도 좋지만, 반대로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만덕산 기슭의 다사로운 햇살을 마주 보며 걷는 길도 운치가 있습니다. 오전에는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오후에는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걷는 길이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과 혜장 선사가 많은 대화를 나누며 걸었던 이 길에 ‘뿌리의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계절에 상관없이 어느 때 어느 시간에 걸어도 좋지만, 특히 백련사의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나 만경루 앞마당의 백일홍이 붉디붉은 빛깔을 쉼 없이 배롱나무의 끄트머리에서 물들이고 있을 때가 좋습니다. 아니 초당 옆의 천일각에서 바라보는 강진만의 철새가 무리 지어 구구대며 짝을 찾아 날아오는 계절이면 더욱더 좋을 듯합니다. 온 대지의 생명체가 꿈틀거리며 지상으로 올라오는 이 계절에 다산초당 길을 걷는다면 우거진 숲보다는 메마른 땅을 딛고 힘겹게 올라오다 미쳐 흙을 만나지 못해 건조해진 온갖 나무의 뿌리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수척한 뿌리의 돌출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특별한 감흥이 가슴 한 자락에 아련히 밀려옴을 느낄 것입니다. 길에 기묘한 형상으로 깔린 그 나무뿌리의 돌출과 돌기들이 마치 다산선생의 유배 생활인 고난과 곤궁의 상징처럼 보여지고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느낌으로 걷다 보면 금세 가슴이 텅 비워지고 확 타오르는 격정의 순간이 엄습합니다. 극히 모순되고 상반된 감정이 교차 되면서 신묘한 착각 즉, 내가 다산이 되고 옆의 친구가 혜장이 되는 황홀한 혼란의 경험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시인 정호승은 이 길을 ‘뿌리의 길’이라는 아주 적절하고 절절한 표현을 빌려 노래했습니다. 이 길을 걸었던 의식 있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성숙한 사색과 사려 깊은 성찰을 끌어냈으리라 짐작됩니다. 자박자박 밟히는 발소리와 보조를 맞추며 걷다 보면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가슴이 숙연해지는 애절함이 엄습해 왔던 경험은 황홀한 착각입니다. 나는 지상의 뿌리가 되어 수 많은 후생들에게 고난과 곤궁의 상징으로 앙상히 드러내고 있는 그 뿌리의 주인인 다산선생께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립니다. 그립고 아쉬울 수밖에 없었던 그분의 유배지에서의 처절했던 고독을 나의 작은 가슴으로나마 흠씬 품어서 느껴보려 함입니다. 다산의 유배길을 홀로이 걸어본다 흙길은 고요하고 돌길은 자박한데 이어진 뿌리의 길엔 곤궁함이 깔려 있다. 초당은 외로워서 그의 넋 배어 있고 천일각 바다 건너 흑산도는 멀어 찬데 혜장과 밤새워 걷던 찻(茶)길이 다사롭다. 귀양길 서러움 먹 갈아 누르시고 오백 권 장한 저서 붓 잡아 남기시니 옷깃을 정히 여미어 임의 뜻 헤아린다. 슬픔과 한숨일랑 먹물 속에 감추고 외롬과 그리움은 붓대롱에 삭이어서 하피첩 두 아들에게 필적 남겨 당부한다. 천리라 머나먼 길 병고의 외론 아내 보고픔 애절치만 갈 길은 까마득 해 유배지 밤 깊을수록 촛농마저 더디 탄다. 이번 붕우회(朋友會) 모임을 남도 답사 일번지의 고장인 강진에서 갖기로 했습니다. 때와 곳에 상관없이 묵은지 냄새 짙게 풍기는 옛 친구들과 만남은 각별한 즐거움이지만, 특히 내 고향 다산초당에서 만난다고 하니 기쁨이 더욱 큽니다. 더불어 다산초당의 ‘뿌리의 길’을 걷는 것 또한 크나큰 즐거움인데 요즘 한창 뜨는 ‘회춘탕’까지 맛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 더더욱 기다려집니다. 회춘탕은 전복, 문어, 토종닭에다 12가지 한약재를 넣고 식염은 일절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폭염의 계절을 맞이하여 기력이 쇠진해 가는 붕우들이 보약 한 재를 달여 먹는 것보다 효과 좋은 건강식이며 코로나로 한참 면역력이 저하된 당뇨와 치매 예방에도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골다공증이 우려되는 여성에게도 큰 효과가 있다고 하니 동행하는 부인들께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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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과 히딩크김상훈 수필가 오늘은 우리 대한민국 전체를 들뜨게 했던 2002년 6월 22일 월드컵 4강을 달성했던 때, 그리고 2019년 7월 10일 메이저리그 올 스타 전에서 최고의 투구로 대한민국 야구팬들은 물론 미국의 팬들마저도 열광케 했던 영광의 순간을 되돌아보면서 류현진 선수와 히딩크 감독 두 영웅을 ”소월정의 주말엽서”의 주인공으로 초대합니다. 동시에 필자의 유치한(?) 한자 놀음의 삼행시로 그들을 소환해서 우리 민족을 하나로 만들었던 짜릿한 순간을 가슴으로 흠씬 품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 민족은 대한민국! 둥둥둥 둥둥! 하면서 온몸에 엔돌핀을 마구 분출하며 붉은 악마와 같이했었던 그 순간을 아마도 영원히 잊지 않을 거라고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말입니다. 2019년 7월 10일, 우리의 희망인 코리안 몬스터(한국인 괴물) 류현진 선수가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의 선발투수로 등판, 눈부신 활약으로 새 역사를 썼습니다. 그는 LA다저스 소속으로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 올스타전 내셔널리그의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우뚝 섰습니다. 그의 말대로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그의 뛰어난 투구는 과연 그 해, 전반기 성적 10승 2패, 평균 자책점 1.73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이며 강력한 사이영상 수상자로 회자 되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모든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마쳤습니다. 커쇼도 하지 못했던 올스타 개막전 등판을 성공리에 끝낸 류현진 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던 기억이 뿌듯함과 함께 맥맥히 가슴을 뛰게 합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최고의 일체감을 보이는 때는 전쟁과 스포츠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날은 모처럼 이 말을 실감했던 쾌거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지랖의 소월정 주인은 지금은 부상으로 (토미존 수술) 인해 올 시즌이 끝난 상황 이어서 언제 다시 마운드에 오를지도 모르는 류현진 선수의 쾌유와 유려한 피칭을 학수기대 하면서 그의 호(號)를 작호(作號)하고 이름을 작명(作名)하여 그날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보고자 합니다. 마구 유현진(魔球 有現進) (魔 마귀 마, 球 공 구, 有 있을 유, 現 나타날 현, 進 나아갈진), 풀이하자면 마술과 같은 공을 언제든지 던질 수 있고 앞으로 더욱 진화한다, 이런 의미입니다. 류현진 선수! 그는 35세, 아직은 좋은 나이입니다. 팔꿈치 수술을 잘 마치고 향후 5년 동안 몸 관리 잘해서 당신 자신은 물론 가족, 그리고 당신을 응원하는 수많은 고국 팬들에게 꿈과 희망을 또다시 전해주는 대선수로 거듭나기 바랍니다. 당신을 위한 삼행시(편의상 오행 시)입니다. 마 : 마법의 구 : 구질 류 : 유려한 투구 현 : 현명한 전략가이니 진 : 진짜배기 투수여라. 또 한 사람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주역 히딩크 감독입니다. 웃지 않으면 너무 근엄해서 말 붙이기가 어려울 것 같은 인상입니다. 그러나 그가 활짝 웃으면서 골을 넣은 선수를 환영하면서 포옹할 때는 한없이 인자한 가족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이렇듯 히딩크는 냉정과 열정을 적절히 조화시켜 선수들 각자의 능력과 기량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그 결과를 극대화 시키는 축구계의 마술사였습니다. 우리는 히딩크 덕택으로 월드컵축구 4강이라는 신화와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참, 그의 어퍼컷 세리모니가 그립습니다. 그 파란 눈의 이방인이 대한민국축구의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그는 서울특별시 명예시민으로 위촉되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습니다. 그때 필자는 그의 우리식 이름을 ‘희득구(喜得球)’라고 명명한 바 있었습니다. (喜 기쁠 희, 得 얻을 득, 球 공 구), 즉 공(볼)으로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 해석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꿈과 희망과 기원을 우리식의 이름에 담아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가 얼마나 우리 국민에게 실력으로 보답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의 능력을 믿고 최대의 수식어를 동원해서 ‘희득구’라고 작명했었고 더불어 호(號)는 ‘거수(巨樹)’ (클 거, 나무 수) 즉 큰 나무라는 뜻으로 찬사를 보내며 기대했던 것입니다. ‘희득구’ 감독을 위한 오행 시도 빠뜨릴 수는 물론 없습니다. 거 : 거인이고. 수 : 수호신이며 희 : 희망의 세리모니 창시자이면서 득 : 득점의 원인 보급자. 구 : 그의 명언은,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 공으로 기쁨을 얻게 하는 큰 나무 같은 사람. 우리에게 크나큰 기쁨을 준 류현진 선수와 히딩크 감독! 두 사람을 생각하면서 주말의 아침에 들뜬 기쁨과 힘을 느껴 봅니다. 기쁨의 뜻이 ‘기’를 ‘뿜’어 내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에게 기를 뿜어내는 미래가 항상 펼쳐지고 동시에 류현진 선수와 히딩크 감독에게도 다시 한번 영광과 환호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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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앞에 남은 세월김상훈 수필가 추석 다음 날 친구L, J와 함께 내 차를 타고 친구B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들은 기분 좋게 한잔 씩 한 상태였습니다.그때 운전석 옆에 앉은L이“니 차에는 음악이 없냐?”라고 하면서CD의 키를 누르자 스피커에서는 나의 애창곡 클리프 리챠드의‘The young ones’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러자L은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용두산 엘리지나 추풍령 고개 같은 것은 없냐?” “친구,자네가 좋아할 만한 노래는 준빌 못했는데,어쩌지?”하는 나의 대답에 자칭 트롯의 황제라는L은 클리프 리챠드의 노래나 나의 대답이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자 뒷자리의J가 거들었습니다. “용두산의 엘리지나 더 영원스나 이젠 경로당에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래들 아니야?”라는 그의 한마디에 우리는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습니다. 용두산이든 젊은이들이든 이 말을 듣고 있는 우리들이든 모두는 졸지에 경로인이 되어버렸습니다.조금쯤 들떠 있던 분위기가 순간 숙연해졌습니다. OECD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는 출산율 최하위,고령자 인구 대비 최고율이라 합니다. 노인들은 늘어나는데 출산율은 세계 꼴찌라니!그래서인지 수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을‘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라고 울부짖는 사회적인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문득 다음과 같은 불안한 생각이 비집고 올라왔습니다. 시내버스나 지하철의 경로석이 일반석이 되고 일반석이 경로석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맹랑한 생각 말입니다. 이어서 지금 전국 곳곳에 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이 어린이의 급속한 감소와 넘쳐나는 노인 인구의 증가로 간판 자체가(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경로당이나 노인의 집으로 둔갑하는 사태가 도래하지 않을까? 어린이를 위한 건물이 노인을 관리하는 경로당으로 리모델링 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면?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라는 낭랑한 노래가 경쾌하게 울려야 할 텐데 울어 봐도 불러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하고는 탁한 노랫소리로 바뀌어 전국적으로 울려 퍼진다면? 하여튼 이런 암울한 생각을 지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습니다. 떠들썩하게 어우러진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피해 내 차로 와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One summer night’진추하의 노래가 경쾌하게 흐르는 차창 너머로 유난히 크고 밝은 한가위 보름달이 온 누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달은 내가 기분이 울적하거나 기쁘거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뜨고 지고를 반복할 것입니다.달도 차면 기운다는 약속을 스스로 충실하게 지키면서 말입니다. 사람 또한 달과 같아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어가고 사멸하면서 그 와중에도 진화를 계속하면서 자신의 삶과 죽음을 경영해 나갈 것입니다. 친구들과 헤어진 뒷날엔 추석의 풍요로움도 시들 해졌습니다. 그 풍성했던 풍경들은 어디로 가고 삭막한 현실에 나는 외로워집니다. 내 앞에 남은 시간을 헤아려보니 정말 황혼의 시기입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내 곁에 있었던 소중한 이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있습니다. 나는 떠나간 친구의 추모관을 찾아서 급히 차에 시동을 겁니다.그와 즐거웠던 순간들을 소환해서 주저리,주저리 중얼거리며 그의 행복했던 시절의 영정 사진을 쓰다듬으면서 되새겨 봅니다. 아껴쓰면15년. 대충쓰면10년. 그럭저럭5년. 아차하면1년. 우리앞에 남아 있는 세월의 시간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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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심당(下心堂)과 석탄주(惜呑酒)김상훈 수필가 하심당(下心堂)! 마음을 내려놓는 집! 가슴이 뻥 뚫린다고요? 아니, 하심당? 도대체 이 알 듯 모를 듯한 곳은 어디야? 그곳에 바로 달려가고 싶은데? 예! 맞습니다. 뚫리거나 달려가고 싶은 그런 충동을 틀림없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심당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하심당 당주(堂主)의 주법강독은 명쾌합니다. "술 주(酒)자를 쓰려면 세 개의 점(…)으로 시작됩니다. 이 세 개의 점 즉, 삼수변은 물 수(水)자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내 나름대로 풀이한다면 술을 마실 때는 한 가지 술로 시작해서 두 잔만 마시되 석 잔 이상은 되도록 삼가라는 뜻이지요. 또 술을 마실 때는 마치 닭(酉)이 물을 마시듯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이렇게 쪼아 마시듯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그 맛을 음미하면서 마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 주(酒)자가 삼수변 옆에 닭 유(酉)자가 있는 이유는, 낮엔 되도록 술을 가까이하지 말고 최소한 유시(酉時, 오후 5~7시)는 넘어서 마셔야 한다는 깊은 뜻이 내재해 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은 하심당에서 물 맑고 공기 좋고 인심 넉넉한 주인장이 내놓은 차를 마시면서 그의 집과 석탄 주와 녹차 제조법 등의 유려한 해설을 듣고 있노라면 가끔 내가 신선이 되어가는구나! 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내 친구는 대나무 고을로 유명한 슬로우시티의 고장인 담양군 창평면에 있는 하심당 당주인 우경(愚耕) 선생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는 홍주 송 씨 12대 종손으로서 600여 평 대지의 150년 된 집에서 고가체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가체험뿐만 아니라 녹차를 직접 덖어 시음, 판매도 하고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석탄 주를 곱게 빚어내는 방법을 계승해서 전수하는 작업을 수십 년 해 온 결과 이제 그 농익은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후대에까지 전승시켜서 곧 명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인물입니다. 물과 누룩과 찹쌀로만 빚은 석탄 주는 아낄 석(惜), 삼킬 탄(呑), 술 주(酒)자로 너무 빛깔이 곱고 맛이 좋아 목으로 넘기기에는 차마 애석하다는 뜻이 있는 홍주 송 씨 종가의 종주만이 제조기술을 알고 있다는 전통주입니다. 나 같은 비주류 인사도 이 향기 짙은 술만은 몇 잔씩 마실 수 있어서 아주 매력적인 술인가 동시에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자자해지고 있는 그들만의 비법으로 빚은 전통주가 되겠습니다. 지난 3월 23일 춘분이 지난 이튿날 홍매화가 만발했던 하심당에서 나는 석탄 주에 흠뻑 취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홍매화의 진한 향기에 취했는지, 우경 선생 내외의 넉넉한 인품에 취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홍매화의 진한 향기와 석탄주의 나긋한 향기와 우경 선생의 곰삭은 향기에 취해서 우리 부부는 하심당의 전통 고가에서 하룻밤을 꿈같이 보냈던 것입니다. 하심당에서 고가체험을 해 보신 분들은 바로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심당 당 주와 각별한 나는 심신이 고단하거나 특히 뭔가 풀리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는 이곳에 들러 향이 좋은 발효차나 삼키기에는 차마 아까운 석탄 주를 마신 후 당주로부터 조언을 들으면서 느린 걸음으로 뒷산을 산책하면 바로 문제가 풀리는 경험이 있어서 더러 찾아가겠다고 스스로 떼를 쓰는 곳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강남 코엑스의 국제 술 박람회에 석탄 주를 소개해서 외국의 바이어를 비롯하여 무역상, 중간상, 대기업의 주류담당 인사들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하니 박수를 보내며 축하드립니다. 기왕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 더 하심당을 설명하자면, 집의 구조는 입구에 400년 된 매화나무의 자목(子木)인 두 그루의 홍매화 나무가 좌우에 있고, 중앙에는 잘생긴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 뒤로는 고가 체험하는 사랑채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본채가 그 위용을 드러내듯 좀 오만한 자세로 높다랗게 버티고 있습니다. 본채 뒤에는 석탄 주를 빚는 주조실과 녹차를 만드는 제다실이 있고, 왼쪽에는 작은 폭포, 오른쪽에는 100년 된 박달나무와 80년 된 푸조나무가 기묘한 형상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연리목이 있습니다. 그 바로 아래에는 하얀 수련이 피어 있는 작은 연못이 다소곳한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담장이 실하게 축조된 길 위로 아름드리 수목이 우거진 울창한 숲길이 이어지면서 표고버섯을 기르는 산책길이 나옵니다, 1km가 넘는 산책길에는 수백 그루의 왕벚나무가 식재되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요즘은 대나무 숲에서 댓잎과 댓잎이 부딪치며 서걱거리는 소리에 청량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 어느 때고 추천해도 결코 누가 되지 않은, 남도의 숨은 보석과도 같은 하심당입니다. 마음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코로나 19로 꽉 막혔던 여행길이 봇물 터지듯 밖으로 밖으로 나가는 주말이라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합니다. 폭염으로 소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을 겸 하심당으로 가기 직전에 신선 되는 연습 삼아 마음을 다스리면서 글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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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김상훈 수필가 나는 그렇게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행복했던 유년기를 보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1950년6·25전쟁 이전과 이후 우리나라는GDP가 세 자릿수가 되지 못하는 세계 최고의 빈곤 국가였습니다. 그렇지만 배가 몹시 고팠거나 도시락을 못 싸갔던 기억은 없습니다. 다만, 똑같은 음식이 입에 물려 신물이 났던 기억은 생생합니다.전 국가적으로 식량이 부족했던 시기이다 보니 어느 특정 계절엔 보리밥만 지겹도록 먹었던 그런 기억 말입니다. 그런데 그 보리밥도 그런대로 먹을 만했지만,보리밥에다 무를 숭덩숭덩 썰어 넣은 무밥만은 내가 가장 싫어했습니다. 특히 그 냄새는 정말이지 너무 싫었습니다.아버지께서는 우리 집에서 쌀밥을 드시는 유일한 절대자의 존재였으므로,그분 외에는 그 누구도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없었습니다. 내가 꾀병을 빙자해서 쌀밥을 몇 번 얻어먹다가 형들의 고자질로 탄로 난 후로는 그 꾀병마저도 씨가 먹히지 않아서 서러웠고 아버지가 입맛이 없기를 빌었던 때가 더러 있었지만,아버지께서는 왕성한 식욕으로 번번이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으므로 더욱 서러운 날이 많았습니다,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 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웃들은 이 무 보리밥도 없어서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있으니 너희들은 다행으로 여기고 아버지 뜻을 잘 받들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거부할 수 없는 협박성 어록을 매양 남기시니 은연중에 우리 형제는 그렇게 길들어지면서 성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아무튼,그런 시절의 어느 날 오늘도 우리 집 밥상은 어김없는 무밥입니다. 나는 밥상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오늘의 밥이 무언지를 귀신같이 맞추는 후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밥상을 보지 않고서도"에이,또 무밥이야!"하면서 동시에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머리를 굴려보니 해법이 나왔습니다. 그래 고모님 댁을 가는 거야.오랜만에 가는데 흰 쌀밥 한 그릇 안 올라오겠어?하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역시 난 머리가 좋아!하는 득의만만함으로 시오리 길의 고모님 댁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고모님 댁에 도착했을 때 그분은 나의 예상대로 친정의 막내 조카를 극진히 환대하신 후 배고프지?하시면서 부리나케 상을 차려 오시는데,아뿔싸!고모님의 밥상에도 시커먼 보리밥에 희끄무레한 무밥이었습니다. "여기도 무밥이야?"하고 원망 섞인 말을 뱉으며 영문몰라 하시는 고모님을 뒤로하고 뛰쳐나오고 말았습니다.왔던 길을 되돌아오면서 냄새나는 무밥을 얼마나 저주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곧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일장이 열리고 있는 곳에 왔을 때 먹음직스러운 보리 개떡을 보자 나는 그만 눈이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배고픔의 인내가 한계점에 이른 것입니다.다행히 좌판 가게에는 늙은 할머니 한 분과 네댓 살 코흘리개 사내아이가 지키고 있었고 파장을 향해 가는 시골 장날의 오후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시는 할머니처럼 한가했습니다. 그래 저 개떡을 딱 두 개만 훔쳐서 달아나자.그 정도로는 할머니가 나를 잡으러 쫓아오지는 않을 거라는 계산이 섰습니다. 만일 나를 잡으러 온다 해도 나는 알아주는 달리기 선수가 아닌가? 심호흡하며 행동을 개시하려는 순간 며칠 전에 읽었던 동화책“장발장”이 뇌리를 강하게 때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무려19년의 감옥살이를?나는 강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래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쁜 짓은 하지 말자.개떡을 훔쳐 먹는다면 넌 엄청나게 후회할 거야 참아야 해,상훈아!넌 참을 수 있어!쓰러지기 일보 직전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홀로 중얼거렸던 것은"잘했어,김상훈!너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는 자기최면의 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선과 악을 선택해야 했던 절박한 순간에 올바른 판단을 했던 당시 나의 결정은 가슴 뿌듯한 기억과 자부심으로 내 인생의 한쪽에 늘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록 훌륭한 사람은 지금까지도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아 있지만,이렇듯 좋은 책에서 얻은 삶의 지혜와 행동은 낯선 할머니와 코흘리개 소년의 고통까지도 느끼게 할 수 있었던 열린 가슴을 가질 수 있게 했던 나의 용기와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아울러 인생을 바르게 성장시키는 길라잡이가 되고 웅숭깊은 생의 찰진 토양이 됐던 빅토르 유고의 소설 속 인물인“장발장”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나의 성장기를 추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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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우회(朋友會)김상훈 수필가 나에게는 붕우회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벗 붕(朋)에 벗 우(友) 자 즉, 최고의 친구라는 뜻을 가진 모임입니다. 1975년에 결성됐으니까 어언 47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꾸준히 만나고 있으니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더불어 나의 생이 끝날 때까지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버리려야 버릴 수도 없는 친구들과의 모임입니다. 모임의 결성 당시에는 파릇파릇 혈기왕성했던 우리는 이제 만나면 건강과 손주 녀석들의 이야기를 하는 노년으로 변했습니다. 현재는 5명의 단출한 회원이 매 짝수 달에 부부동반으로 만나는데 주로 광주를 중심으로 담양, 곡성, 구례, 여수, 순천, 보성, 벌교, 영광 등의 맛집을 찾아 식도락을 하면서 인근의 풍광도 즐기며 이름난 찻집에 들러 즐거운 수다도 떨곤 합니다. 대다수가 부모님이나 장인 장모님이 이젠 안 계시고 자녀들도 장성해서 결혼하다 보니 만나면오직 우리끼리만 즐기며 가벼운 논쟁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토닥토닥 싸우기도(?) 하는 그런 허물없는 친구 모임입니다. 언제부턴가 유명 맛집을 찾아서 미식가가 된 듯 가끔은 폼도 한 번씩 잡아 보면서 우리 또래들이 즐기는 고만고만한 여가, 그리고 우리 친구들만의 특질과 체취가 배어 있는 익숙한 언어와 행동들로 옛 추억 몇 개를 끄집어내서 낄낄거리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부인들도 오랫동안 같이 만나다 보니 정회원 이상의 위치로 비중이 커져 버려 그 위상들이 한껏 높아졌습니다. 어쩌다 한 분이라도 참석하지 않으면 그 빈자리가 그렇게 크게 보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 회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그동안 20여 명 남짓한 인원이 붕우회의 회원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유명을 달리한 회원 5명, 해외에 이민한 회원 3명,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참석하지 않고 있는 회원 5~6명, 현재 만나고 있는 회원은 5명입니다. 요 몇 년은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매번 날짜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이겠지만 그래서 더욱 보고 싶은 친구들입니다,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친구를 생각하면 우리 붕우가 기본이고, 그 붕우들을 생각하면 설렘과 같은 미묘한 파장이 가슴에 일렁입니다. 이것은 바로 흔히 말하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듬뿍 들어 있는 농익은 정을 서로 교류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하고 감미로운 감정이 아닐까요? 우정이란 친구(友)와 정(情)을 나누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을 만나서 정을 나눌 생각을 하면 가슴으로부터 미묘한 설렘이 밀려오고 알싸한 그리움이 일렁일 때가 많습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런 감정은 더욱더 절절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붕우 친구들 모두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지난 5월27일, 캐나다의 밴쿠버로 이민을 간 친구, 우리 붕우회의 창립멤버인 국원이가 코로나의 기세가 좀 수그러 들자 한국에 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운 친구들을 만나보고 온 김에 치과치료도 받고 또, 은퇴자의 여유로움도 느껴보고 싶어서 귀국을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무조건 여수로 내려 오라고 초대 했습니다. 우리집에서 1박을 하고 우리의 정신적인 무대인 광주로 가서 붕우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이 28일이 토요일 이기도 하고 우리 붕우가 오랜만에 모이기로 잠정적으로 정해놓은 날이기도 해서 더욱 이미가 있는 날 이었습니다. 국내에 있는 붕우회원 전원은 부부동반으로 그를 환영했고 하심당의 당주 우경(愚耕)은 다과와 석탄주, 그리고 숙식을 제공 했습니다. 밤이 이슥하도록 석탄주를 마시며 깔깔 거리다가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 났더니 또 남주(南舟)께서 섬진강가의 압록으로 참게 수제비를 먹으러 가자는 제안이 있어서 우리는 1박2일을 온전히 즐겼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국원이의 가슴을 울리는 몇 마디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한국을 떠나면 언제 다시 올 수를 기약 할 수도 없고 어쩌면 친구들과의 오늘 만남이 마지막 일 수도 있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 는 말에 우리 모두는 공히 가슴으로 절절이 느끼고 그리고 동조 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70대 중반의 우리는 그리고 우리의 노년은 그야말로 ”人生如白駒過隙“(인생여백구과극) 즉 인생은 백마가 달려 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빨리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김국원! 그는 캐나다로 곧 떠나지만, 언제가 다시 만나기를 두 손 꼭 모아 기원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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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행일치(言行一致)김상훈 수필가 요즘 젊은이들이 어른을 공경하는 모습은 처녀 얼굴에서 수염 찾기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시대적 현상인지 세대 갈등인지 따지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서 어른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젊은이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입니다. 어느 쪽의 잘못이라고 지적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인 듯합니다. 아울러 한쪽을 비판하거나 옹호할 수도 없는 문제라서 이 상황은 상당한 우려를 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과거보다 핵가족이나 결손가정이 많이 생겨난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으론 이 문제는 젊은이들이 상상력이나 의식의 빈곤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나이 든 사람들이 어른 노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1950년대 후반쯤 아버지께 들었던 말씀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대우받기를 바란다면 대우받을 수 있는 언행을 하라. 대우받지 못할 말과 행동을 하면서 대우받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마치 손을 대지 않고 코를 풀려고 하는 것과 같다." 솔직히 그때는 아버지의 말씀이 딱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물론 60여 년 전의 시대적 환경이 지금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고 하겠지만, 사람 사는 이치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다고 말하는 나도 그 세대의 한 사람입니다. 내가 나이 든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입장은 못되지만, 이 시대의 문제는 젊은이들의 생각을 나이 든 사람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나이 든 사람들도 한때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었지만, 지금 이 시대의 주인공은 젊은이들입니다. 젊은이들의 입장과 생각을 나이 든 사람들이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나이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루하고 진부한 사고입니다. 나이든 사람들은 항상 자기 옳음의 금과옥조로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경험이 물론 소중하나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또 시대에 따라 경험보다는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사고가 더 값어치가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으니 대우도 받고 공경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한창 떨어지는 괴변입니다. 대우나 공경을 받고 싶다면 반드시 그에 걸맞은 말이나 행동이 뒤따라야 할 것이지 단순히 나이 문제가 아닙니다. 늦게나마 제가 이런 자각이 생겼다는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교도소 재소자의 80%는 입과 손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소에 말을 할 때는 함부로 입을 열지 말고, 신중히 생각하고, 말의 실천을 고려해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어진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빨리빨리, 대충, 성과 올리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조금은 느리더라도 진중하게 과정의 충실함으로 일 처리를 하는 것이야 말로 나름대로 나잇값을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바로 노인의 가치이며, 오늘날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경향을 이해하고. 격려하고. 보완해 줄 수 있는 노인만의 가치일 것입니다. 별로 성공하지도 못한, 그렇다고 훌륭하지도 못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까 매우 부끄럽습니다. 그간 매사를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을 이제야 깨우치게 된 것입니다.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내 인생이 훨씬 쾌청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디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기가 그리 쉽겠습니까? 그저 지금부터라도 언행일치해서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의 주인공인 젊은이들에게 존경받기보다는 인정받아서 그들과 동행할 수 있는 노년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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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김상훈 수필가 모든 면에서 미흡하고 부합하지도 못했던 아비이었지만, 너는 나의 마음을, 나는 네 마음을 서로 알고 있다는 데는 너도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동의할 수 있겠니? 동의한다면 38년 동안 너와 나의 부자로서의 갈등과 반목, 그리고 분노와 서운함은 저 태평양의 깊고 푸른 물속에 영원히 수장시켜 버려라. 그리고 솟아올라 미지의 세계로 비상하는 비행기의 양 날개에 새로운 희망과 꿈을 실어라. 그리하여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너의 가족, 새넌과 재이를 뼛속 깊이 각인시켜 그 미지의 미국 땅에 터를 박아라. 미국의 50개 주에서도 가장 유색인종 비율이 낮다고 알려진 아이오와주의 디모인이라는 곳에서 건국 초의 개척정신으로 모든 문제를 타개해 나가자고 부르짖었던 케네디의 외침. 즉 닉슨과의 대통령선거전에 내세운 대외정책의 핵심이었던 ‘뉴프런티어’ 정신으로 새롭게 너의 생을 개척해 나아가라. 비옥한 땅에 김해김씨 70대손, 감무공파 20세손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스스로 네 자식 재이(在怡)를 엄하게 다스려라. 다행히 네가 정착하는 곳이 너의 처가 동네라서 나는 일단 맘이 놓인다. 그리고 얼마 전 새넌이 너의 현(炫)자 위로 6대, 밑으로 6대의 항렬자를 알려 달라는 주문은 내게 상큼한 떨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내가 족보를 정성껏 뒤지고 들여다본 후 너에게 보낸 그 항렬 표는 잘 간직해 두었다가 재이에게 전해주기를 당부한다. 나는 새넌의 그 행위에 정말로 탄복했다. 몹시 고마웠다고 네 처에게 꼭 전해주기 바란다. 아비는 너의 가족의 화합과 결속과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70이 넘어간 아비의 생각은 이제 너와 내가 서로 만날 기회가 얼마나 될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구나. 그래서 이제 내가 너에게 하는 다음의 말을 유언 이상의 무게로 꼭 실천하기를 강조한다. 첫째, 재이에게 우리말과 우리글은 꼭 가르쳐라. 둘째, 미국의 전통과 문화에 모나지 않게 자연스레 익히고 대처해라. 셋째, 일주일에 한 번은 네 엄마를 위시해서 전 가족이 통화하자.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재이를 끔찍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재이가 후일에라도 꼭 기억할 수 있도록 가르쳐라. 아비는 너희들이 이곳에 왔을 때 40개월짜리 나의 손자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기억할까? 하는 의구심에서 갖은 애교와 별난 행동을 동원해서 손자의 환심을 사도록 노력했었다. 우리말도 좀 느리고 영어도 아직 서투른 아이에게 혼란은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만, 하여튼 우리 부부는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피붙이인 손자에게 정말 잘해 주고 싶었고 기억 받고 싶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너의 잠재 능력을 믿는다. 어떤 환경이나 고난에도 스스로 잘 해결하리라 너의 굳센 정신력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너는 태생적으로 몸도 건강하고 정신력도 탁월하다고 평소에 아비는 많이 느끼고 있었다. 낯설겠지만 미국이라는 곳도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니 그곳의 문화에 모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익혀서 대처하다 보면 길이 열리지 않겠느냐?. 멀리 떠나 더욱 보고 싶은 사랑하는 내 아들아! 다시 만날 땐 뜨거운 포옹으로 너를 안아주마. 네 꿈이 영글 때까지 아비는 기도로써 너의 성공을 날마다 빌겠다. 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로 태어난 너에게 한없는 애정과 고마움을 보낸다. 언제나 건강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가족이 되자. 그런 의미로 우리 같이 파이팅을 외쳐서 가족, 그리고 부자간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꾸나. 사랑하는 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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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감별사 되기김상훈 수필가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자면 누가 까마귀의 암·수를 구분하리오라는 말입니다. 까마귀의 암·수는 식별할 수 없으니 그놈이 그놈이라는 속된 의미가 있습니다. 꿩이나 닭은 암컷과 수컷을 바로 알 수 있지만, 까마귀는 온몸이 검은 데다가 크기도 고만고만해서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을 빗댄 말로 그×이 그×이라는 속된 의미를 담고 있고 겯들어 비둘기나 까치도 암수 구분이 되지 않는 과의 조류입니다. 6·1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선거에 입후보한 사람들이 명함을 돌리며 구호와 이름이 적힌 홍보판을 메고 허리를 연신 직각으로 구부리는 어설프디어설픈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계절이 도래했습니다. 그들은 너나없이 매우 근면하고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보입니다. 만일 유권자들이 자기를 선택만 해 준다면 그야말로 이 한목숨 다 바쳐 우리 고장과 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하겠다는 결의에 가득 찬 표정이 역력합니다. 그러나 정치인은 거기서 거기, 다 똑같다는 생각은 비단 필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습니다. 낭자하게 떨어진 낙엽과 비 온 뒤 을씨년스러운 거리에 대책 없이 추락해서 나뒹굴고 있는 입후보자들의 명함들이 그야말로 속절없이 버려진 채 구겨지고 찌그러지고 어그러져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 화려한 업적과 경력과 살아온 이력들이 자랑스레 찍혀진 명함 위로 비둘기 몇 마리가 구구대며 도로 위의 먹이를 쪼고 동시에 배설하면서 종종댑니다. 비둘기 또한 하나같이 똑같이 생긴 놈들입니다. 어느 놈이 리더인지, 아빠 비둘기인지, 엄마 비둘기인지, 아니면 새끼 비둘기인지 우리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토록 정치하는 거의의 사람들은 이 사람이 그 사람 같아서 어느 누가 진국인지, 어느 누가 헛방인지 알아내기란 조개 속에서 진주를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오합지졸(烏合之卒)이나 오비이락(烏飛梨落) 등 까마귀를 부정하는 사자성 어랄지 정몽주 어머니의 고시조에도 까마귀를 경계하라는 말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이렇게 아들에게 신신당부하지만, 정몽주는 이성계 문병을 갔다가 그의 아들 이방원의 하수인인 ‘졸개 까마귀’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피살을 당합니다. 까마귀의 감별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까치는 길조. 까마귀는 흉조. 이렇게 규정 지어진 그 배경에는 까마귀와 까치의 울음소리의 다름 일 수도 있겠습니다. 까치는 왠지 좋은 소식을 전할 것 같은 경쾌한 기대감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까치 또 한 암수 구별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한계입니다. 지방자치의 꽃이라는 지방선거가 자기편, 또는 헌금을 많이 내는 입후보자가 공천권을 따내는 그릇됨으로 흘러가고 있는 정황들이 심심찮게 감지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제발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일이 생겨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유권자들은 조개 속의 진주를 찾아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혜안의 지혜를 터득하면 좋겠습니다. 즉, 수많은 까마귀 중에는 그래도 개인의 사익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하는 정직한 까마귀도 어딘가에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본인 스스로 똑똑한 까마귀 감별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구 공산국가였던 소련의 흐르쇼프 서기장의 말이 기억납니다. ‘정치인은 다 마찬가지다. 심지어 강도 없는 곳에다 다리를 놓아 주겠다는 약속까지 한다.’ 이토록 진실과는 거리가 먼 정치가를 가려내는 매의 눈을 가진 까마귀 감별사가 되어 풀뿌리 민주주의로 성장하는데 초석이 되는 유권자가 많이 생겨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