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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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에서 골프를 보다'골프대회의 명칭은 초청받은 선수만 참가할 수 있는 '인비테이셔널 invitational'이 있고 아마추어를 비롯한 모든 선수에게 개방한다는 의미의 '오픈 open'이 있다. 그 외에 프로 선수들만 참여하는 '챔피언 쉽'과 '클래식'이 있으며 그 외 대회 성격에 따라 마스터스, 매치 플레이, 챌린지, 프로암, 채리티라는 이름으로 대회명이 결정된다. 골프 경기방식은 크게 '스트로크 플레이'와 '매치 플레이'로 나눌 수 있다. '스트로크 플레이'는 정해진 홀을 마친 후 타수의 총합이 가장 적은 선수가 이기는 게임으로 거의 모든 대회가 채택하고 있다. 골프가 개인 운동이고 기록경기라고 말하는 것은 이 방식이 주는 영향이 큰 것 같다. '매치 플레이'는 상대가 있는 탁구나 테니스처럼 게임을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역동적인 측면이 있다. 이 경기 방식은 매 홀마다 1대 1로 승부를 겨루어 타수가 적은 사람이 이기고, 무승부인 경우는 비기게 되어 다음 홀로 넘어간다. 이 경기는 상대와의 미묘한 심리전으로 인한 변수가 작용하거나, '모 아니면 도'라는 무모함도 있어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게 하기도 한다. 얼마 전 끝난 '2021 WGC 델 테크놀로지 매치플레이'대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4강에 든 선수 중 세계랭킹 10위권의 선수는 없었고 결국 세계랭킹 34위의 빌리 호셸이 스코티 세플러를 꺾고 우승하며 막을 내렸다. 이처럼 '매치 플레이'는 홀마다 변수가 많이 작용하여 경기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흐름에 따라 일순간 판도가 바뀌어서 이변이 많다고 할 것이다. '매치 플레이'의 흐름과 순간순간의 선택을 보다 보면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 주식 '이 떠오른다.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그동안 묶여있던 자금이 찾은 곳이 주식시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는 '주식'을 처음 시작하는 ' 주린이 '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고 TV 방송에서는 예능을 통해서도 주식 강의를 거의 매일 보내고 있으니 가히 주식 열풍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그동안 이 분야에 관심이 없었던 20,30세대의 유입은 코스피지수 3000 고지를 가볍게 넘기면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주식이 이처럼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 중에는 이 젊은 세대들의 '게임 능력'도 한 몫한 것 같다.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게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주식의 장(場)에서도 사이버 게임하듯 매수와 매도를 한다. 이들은 장기적인 투자보다 게임을 즐기듯 요동치는 파도를 뛰어넘는 주가의 파도타기를 즐기는 게 아닐까 싶다. 단타가 주는 매력은 순간순간 변하는 상황에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짧은 선택의 순간은 단타의 묘미이자 함정이지만 몰입의 순간 찾아오는 감은 마치 긴장되는 퍼팅 같다. 무언가 몰두하고 몰입하는 사람은, 순간 현실의 벽을 넘어선 자신도 모르는 기(氣)를 발산한다. 골프에서 결정적인 퍼팅을 성공하고 난 기분처럼 고점의 순간 매도하고 빠져나가는 묘미는 짜릿한 전율이다. 주식과 골프에는 이처럼 일치하는 것이 있다. 장(場)이 시작되기 전의 기대와 설렘은 라운드 전날의 선잠 같다. 주식은 사고 나서도 좀더 살 걸 후회하고, 팔고 나서 좀더 참았다 팔 걸 하고 후회한다. 골프는 치고 난 후에 잘못 친 걸 안다. 후회의 연속이고 아쉬움이 남는다. 주식과 골프에는 승부를 가르면서 느끼는 재미가 있다. 골프가 내기의 재미 같은 것이라면 주식에는 도박의 요소 같은 묘한 재미가 있다.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것이 도박이라고 말한다.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들은 접대나 노름으로 생각한다. 이런 부정적인 요인으로 인해 주식과 골프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포도를 먹지 못한 여우의 우화가 생각난다. " 저 포도는 무척 실 거야, 시어서 먹을 수 없을 거야 "라고 말하며 높은 곳에 달린 포도송이를 바라보는 여우의 자괴감 가득한 눈이.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은 '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샷 '에 대해 얘기한다. 해설가들은 ' 모든 샷이 중요하다고, 골프에서 중요하지 않는 샷은 없다 '라고 한다. '2021 WGC 델 테크놀로지 매치플레이'대회에서 맷 쿠차는 3위를 했다. 맷 쿠차는 4강에 오를 때까지 한 번도 패하지 않았는데 원인은 퍼팅의 승리였다. 평소 중장거리 퍼팅을 잘한다고 알려졌지만 거의 실수가 없었다. 마지막 날, 바람 때문이었는지 혹은 5일간의 일정에 따른 체력적인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퍼팅이 발목을 잡아서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하고 3,4위전을 치르게 되었다. 미국 여자 프로골프투어 (LPGA ) 기아 클래식에서 박인비는 LPGA 통산 21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박인비 우승의 원동력은 역시 퍼팅이었다. 그녀는 그린을 파악하고 그린의 흐름을 읽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 같아 보인다. 그런 그녀의 능력은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 같다. 그녀만의 직관이나 통찰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박인비만의 퍼팅 DNA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LPGA 선수 중에 미셀 위나 렉시 톰슨을 보면 박인비와 확연히 대조된다. 이 선수들은 남자 선수와 쳐도 밀리지 않는 장타 능력에 비해 불행히도 퍼팅 실력은 조금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녀들이 박인비 선수와 같은 퍼팅 DNA를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신은 모든 것을 다 주지는 않는 것 같다. 퍼팅은 프로 선수에게도 아마추어의 스코어에서도 가장 중요하다. 골프를 즐기면서 내기를 하는 것은 승부의 재미를 위해서다. 아마추어는 홀마다 '매치 플레이'를 하고 18홀이 끝났을 때는 '스트로크 플레이'로 타수를 계산한다. 이 변형된 경기 방식은 아마추어들끼리 재미와 배려를 위한 것이다. 물론 승자 독식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골프는 계속된다. 오늘 이겼다고 내일도 이길 수는 없다. ' 어제는 바꿀 수 없고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골퍼에게도 주식투자자에게도 전하고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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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당신의 드레스 코드는.봄이 되자 꽃들은 줄지어 피어나고 나무도 새 옷으로 단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냇가의 버드나무도 연둣빛으로 물이 올랐고 느티나무 가로수는 새 잎이 허공에 매달린 모빌처럼 가지 끝에 떠 있습니다. 야산이나 도로가에서 흔히 보이는 오리나무가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골퍼처럼 겨우내 달고 있던 까만 방울 사이로 순한 연두색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습니다. 봄이 오는 골프장은 변하는 풍경으로 매일 새로워집니다. 잔디는 이제 발아하는 씨앗처럼 싹을 내밀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다만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날씨가 좋아 골퍼를 유혹합니다. 이 시기의 골프장 환경은 사실상 최악입니다. 그린은 구멍을 뚫기도 하고 모래를 뿌려서 적정한 스피드를 기대할 수 없고 페어웨이 역시 털갈이하는 동물처럼 푸석거리고 어떤 곳은 객토하듯 파헤쳐 놓은 곳도 있습니다. 골프가 룰을 중요시하는 운동이지만 요즘 같은 상황에서 '룰'을 논한다면 야박하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 '좋은 곳에 놓고 치세요'라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배려를 말하는 이유는 관계의 핵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관계의 소중한 울타리를 감싸고 있는 관심과 배려, 이해나 공감 같은 말은 골프장 관계자에게도 꼭 필요합니다. 최근 골프장의 횡포는 극에 달한 듯합니다. 그린피를 올리다 지쳐서 카트비를 올리는 실정이니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혹시 '페어웨이 관리비'라고 새로운 명목을 붙여 비용 올리기를 시도하지 않을까 지켜볼 일입니다. 올해도 골프장은 예약은 어렵고, 비용은 비싸고, 서비스는 열악한 상태로 갈 것 같습니다. 골퍼와 골프장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은 코로나 19가 끝나야 할 이유로 해외여행을 꼽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이 가능해지면 제일 먼저 갑질하는 국내 골프장을 떠나 대접받는 곳으로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골프장에서 동물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미를 따르는 오리가족이나 병아리처럼 다리가 짧은 꿩 식구가 줄지어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걸 본 적도 있습니다. 어떤 홀에서는 캐디가 주는 과자나 견과류 따위를 받아먹기 위해 티잉 그라운드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까치도 있습니다. 캐디가 던져주는 과자를 너무나 능숙하게 부리로 물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까치의 지능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까치는 흰색과 검은색의 배색 때문에 그리고 긴 꽁지깃으로 인해 연미복을 입은 것처럼 보입니다. 까치가 우리에게 친숙하고 사랑받는 데는 까치의 지능과 더불어 흑백이 대비를 이루는 깔끔한 색상도 일조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골프웨어에도 까치처럼 무채색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아무래도 젊은 층의 유입으로 인해 골프웨어도 색상의 변화를 꾀하는가 봅니다. 의류의 색상은 대체로 젊을수록 무채색을 좋아하고 나이가 들수록 유채색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골프 브랜드가 알록달록하고 형형색색으로 단장된 옷을 선보였다면 최근의 트렌드는 CLEAN&SIMPLE과 기능성 원단에 더 초점을 맞춘 듯합니다. 여러 가지 색상보단 블랙과 화이트를 메인 색상으로 가면서 블루나 레드 혹은 형광색 같은 보조 색상으로 단조로움을 피해 가는 것 같습니다. 골프선수 중에 옷 잘 입는 선수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이안 폴터'를 첫자리에 세우고 싶습니다. 물론 '리키 파울러'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자신의 옷 브랜드 '이안 폴터'의 디자인도 참여한다는 그의 패션 감각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특히 그는 체크를 잘 소화합니다. 솔리드 배색은 정돈이 조금은 쉽습니다. 보색 대비, 채도 대비, 명도 대비처럼 미술시간에 배운 색상의 대비를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색상을 배열하거나 정돈할 수 있습니다. 옷가게의 패션 어드바이저들이 흔히 쓰는 'tone on tone'이란 방법도 참고해 볼 만합니다. 이 방법은 색상을 겹친다는 말처럼 비슷비슷한 색상끼리 모아서 통일성을 주기 때문에 차분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체크는 응용이 필요하고 옷을 소화할 만한 모델의 능력이 요구됩니다. 다시 말해 옷을 입을 사람의 비주얼이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안 폴터''는 자신이 입은 옷을 빛나게 하는 능력이 충분해 보입니다. 옷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표현하며 표정과 몸짓에서 뿜어 나오는 카리스마는 입고 있는 옷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이안 폴터'가 체크무늬로 연상된다면 검정 바지와 빨간 티셔츠는 타이거 우즈를 대변합니다. 요즘 말로 '검빨'로 불리는 그의 복장은 색채 심리학에서는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빨강과 검정은 '경고나 정지 혹은 출입금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 드레스 코드에서 '검빨'은 '황제'를 의미합니다. 얼마 전 타이거 우즈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을 때 많은 선수들이 '황제'의 쾌유를 빌면서 '검빨'을 드레스 코드로 하고 경기를 했습니다. 수많은 '황제 '복장은 다시 보기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먼 훗날, 위대한 구기종목 선수의 백넘버를 영구결번하듯이 '검빨'은 골프 드레스 코드의 영구결번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초봄의 골프 스코어는 잘 차려입은 복장만큼, 주변의 풍경만큼 화려하지 못합니다. 새싹을 틔우는 잔디의 여린 연두색깔이 아가의 손처럼 곱다고, 지고 피는 꽃이 아름답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진정한 골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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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골프에 대한 단상들.골프는 겨울에 적합한 운동은 아니지만 골퍼의 열정은 겨울이라고 비켜가지 않은 것 같다. 겨울이 오면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은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났다. 그곳에서 길게는 한 달도 지내다 오는 사람도 있고 휴가를 얻어 2주 정도 골프를 즐기다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골프장은 이 시기를 포기하고 지냈던 것 같다. 그래서 비수기의 겨울 골프장은 이벤트도 많았고 그린피 할인이나 서비스도 좋았다. 아침 일찍 내방하면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도 있었고 여성들끼리 오면 한 사람의 그린피를 면제해 주기도 했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골퍼들에게 좋았던 시절이었다. 추운 겨울이어도 동남아로 떠날 수 있었고 좀 춥더라도 고국을 지키며 한가한 겨울 골프를 느낄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코로나 이전의 상황이었다. 불과 1년 전의 기억이지만 아주 멀리 와 버린 느낌이다. 이제 골프장 예약은 계절과 관계없이 치열하다. 따뜻한 남쪽을 찾아 떠날 수 없어 선택지는 좁아졌고 20.30세대의 출현으로 수요는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퍼들은 미련을 못 버리는데 연습장에 가보면 그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추운 날 무슨 영광을 보려고 저리도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는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의 스윙에 도취되어 끊임없이 반복하는 사람을 보면서 손을 녹이려고 난로를 찾는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골프가 지닌 매력과 중독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골프의 재미를 설명하는 유머 중에 남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앉아서 하는 것 중 가장 재밌는 것은? ‘노름’ 서서 하는 것 중 가장 재밌는 것은? ‘골프’. 겨울 골프장은 황량하다. 비어있는 페어웨이와 잎을 떨군 나무들이 빈 하늘을 더 쉽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누렇게 변한 잔디 색깔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 썰렁하게 한다. 지난여름 파릇파릇하던 푸른 잔디는 누렇게 변하고 회갈색의 퇴색된 산의 풍경도 적요롭게 느껴진다. 골프장의 잔디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한국형 잔디라고 말하는 중지와 야지 그리고 켄터키 블루 그라스, 벤트 그라스로 대표되는 양잔디로 구분된다. 한국형 잔디라고 말하는 떼장 잔디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잘 자라고 관리도 편해서 많은 골프장에 식재되어있다. 여름철 스포츠머리처럼 잘 깎인 페어웨이는 공을 살짝 띄워주기에 샷을 하기 편하다. 이 잔디는 특히 포복형으로 누워서 줄기 번식을 하는데 이는 뒤땅을 치더라도 미끌리면서 공을 타격해줘 거리의 손해가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가을철에 접어들면 휴면기로 들어가 색상도 누렇게 변하면서 데쳐진 부추처럼 힘이 없어진다. 그리고 찬바람이 남은 물기를 날리면 마른풀로 남게 된다. 이 한국형 잔디는 잔디의 시절과 마른풀의 시기를 통해서 골프를 즐겨야 할 때와 쉬어야 할 때를 색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양잔디는 겨울철에도 푸르름을 유지하는데 추워질수록 선명도는 떨어진다. 겨울철 제주도에 가면 이런 잔디를 만날 수 있는데 켄터키 블루그라스, 벤트 그라스, 버뮤다 그라스, 페스큐 등이 있다. 한지형 잔디라 더위에 약해서 여름이 긴 우리 기후에는 관리가 쉽지 않다.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회원제 골프장에 많이 식재된다고 한다. PGA, LPGA 중계를 보면 선명한 색상의 말끔한 잔디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양잔디다. 이 잔디는 포기 번식을 해서 웻지 샷을 할 때 어김없이 돈가스 한 조각만큼의 디봇 자국을 만든다. 뒤땅을 쳤을 때 미끌리지 않고 땅에 박힌다. 용서나 관용이 없다. 그러나 정타에 맞췄을 때 손바닥에 전해지는 타구감은 일품이다. 아마추어 골퍼 대부분은 자신의 샷으로 생긴 디봇을 모른 채 지나간다. 이것은 좋은 매너가 아니다. 뒤에서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디봇을 메꿔주는 아량과 여유는 있어야 한다. 20년 이상 골프를 즐긴 고수들은 겨울 골프를 이렇게 정의한다. ‘겨울 골프의 관건은 바람이다. 그리고 스코어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겨울 날씨는 바람에 따라 천양지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 차이는 햇볕이 비치는 양달과 그늘진 응달처럼 극명하다. 냉랭한 공기도 멈춰있을 때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바람 불지 않는 날 햇빛을 마주 보고 걷다 보면 뜻밖의 평화를 얻을지 모른다. 겨울 골프에서 정상적인 게임을 하려고 생각한다면 오류다. 모든 것이 얼어버린 동등한 조건이란 전제는 1번 홀을 지나면서 쓸모없게 된다. 페어웨이도 얼어있고 벙커도 그린도 얼어버린 환경에서 자신에 찬 샷은 무용지물이 된다.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고 안다 하더라도 속수무책이다. ‘굿 샷~’을 외치고 올라간 그린에서 사라진 공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다반사다. 겨울 골프는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사람의 기대를 여지없이 뭉갠다. 모든 상황은 ‘운’에 의존해야 편해진다. 그리고 임기응변과 순간의 지기에 능한 사람이 유리하다. 한 번은 벙커에 빠진 공을 퍼터로 꺼내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겨울 골프는 진지하기보다 즐길 줄 알아야 재밌다. 룰도 명량 골프로 적용하여 즐긴다면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은 열사의 사막에서도 매트를 들고 다니며 친다고 한다. 시베리아 눈 속에서 골프를 쳤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날씨가 추워졌지만 겨울 골프는 이제 시작이다. 두꺼운 옷차림으로 얼어버린 호수를 바라보며 겨울을 만끽할 시간이다. 귀마개도 양손 장갑과 핫팩도 겨울이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기억하자, 다시 오지 않을 2020년의 겨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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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골퍼가 온다'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센트럴 파크 남쪽 연못에 살고 있는 오리가 어떻게 겨울을 나는지 궁금했다. 연못이 얼어붙고 눈이 내려서 쌓이면 오리가 걱정스러웠다. 택시 운전사에게 물어보지만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춘기 소년이 성장기에 겪게 되는 불안한 감정을 그린 이 소설은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다양한 사건과 상황 속에서 대처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인생을 통해 누구나 지나는 시기인 ‘사춘기’는 ‘발달과 행동’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증상 중 연예인이나 이성을 좋아하면서 생겨난 사랑의 감정은 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랑은 순간 무언가에 홀리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런 감정은 당사자는 못 느끼지만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마치 차안대를 두른 경주마처럼 좌우를 살피지 않고 앞으로만 질주하는데 이런 무모함도 사랑의 속성 중 하나 일 것이다. 그래서 감기와 사랑은 감출 수 없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어디서든 드러나게 되어있으니까. 골프도 그런 것 같다. 골퍼 역시 어디서든 티가 난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목욕탕에서 전신 거울을 보며 골프 스윙에 빠져 회전하는 사람을 보는 경우가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흐릿하게 비치는 자신을 보며 몸을 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골프와 사랑에 빠진 골퍼들이다. 최근 들어 골프인구는 부쩍 늘어났다. 특히 젊은 20,30대의 여성이 주류를 이루고 덩달아 그 또래의 남성들도 합류하고 있다. 젊은 층의 유입은 코로나 19가 기인한 측면이 있는데 SNS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과 스크린 골프를 통해 게임의 문턱을 쉽게 넘어온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코로나 19는 비대면과 비접촉의 일상으로 사람들을 이끌었고 자연스럽게 전화로 모든 걸 해결하도록 일상을 만들어 버렸다. 코로나가 만든 세상은, 만남은 사라지고 화면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며 검색을 통해 타인을 알아가도록 재편해버린 것이다. 만나지 않고 화면으로 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세상. 학교도 직장도 세상과의 소통도 만남 없이 가능한 세상이 된 것이다. SNS를 통해 사람들은 소통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다. 골프는 일정 부분 SNS가 요구하는 소통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가장 아름다운 배경과 멋진 옷으로 자신을 꾸미고 근사한 장면을 화면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멋진 클럽하우스, 수형 좋은 나무, 가지런히 정돈된 정원, 색깔을 맞춰 조성된 화단, 넓고 푸른 페어웨이와 한가로운 풍경들은 사진 찍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화보집을 만들기에도 충분한 것들이다. 골프는 이런 멋진 장면을 연출하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SNS에서 자주 쓰는 말 중에 ‘간지’라는 표현이 있다. 영화배우 소지섭의 멋진 모습을 ‘소간지’라고 하듯이 ‘간지’ 나는 모습은 SNS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골프 클럽과 의류도 ‘간지’에 편승해 트렌드로 떠오르고 일부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하는 것 같다. 스크린 골프는 여러 측면에서 골프를 가볍게 해 준다. 이것은 마치 당구를 치듯 자신의 장비 없이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골프를 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골프는 장비를 갖추고, 레슨을 받아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때로 그것이 골프 진입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어린 시절부터 게임에 익숙하고 최근 스크린 야구 등을 통해 실외 스포츠를 실내에서 접하기도 한 20,30의 젊은이들은 골프 역시 그리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특히 유연성이 좋은 젊은 사람들은 스윙을 습득하고 이해하는데 좀 더 빠를 것이고 게임하듯 룰을 쉽게 터득했을 것이다. 그리고 골프는 중독의 사슬로 이들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골프 진출은 골프 산업 측면에서 반길만한 일이지만 기존 골퍼의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지만은 않다. 가장 먼저 골프장 예약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겨울 골프장은 비수기라 그린피 세일도 많아서 찬 바람 불지 않는 맑은 날 예기치 않는 번개모임으로 라운드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예약 불가’라는 참담한 시기를 살고 있다. 시간에 맞춰 예약사이트에 접속하고 손가락 신공을 부리며 클릭해도 1분 만에 사라지는 허탈감 때문에 간혹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도대체 이 과잉이 언제까지 갈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수요가 넘치는 이 상황을 골프장에서는 여유롭게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그린피와 카트비를 인상하고 서비스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며 ‘물 들어올 때 노 젓자’하며 뱃놀이만 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겨울의 골프장은 한적한 낭만이 있었다. 간혹 라운드 중 눈을 맞기도 하는 행운을 누린 적도 있다. 친 공이 얼어있는 연못을 맞고 온 그린 된 경우도 있었다. 골프를 사랑해서, 골프에 빠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얼어있는 호수에 오리는 날아가고 없을 것이다. 골프장 사람들에게 오리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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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에든버러에서 온다'날씨의 변화가 있을 때나 계절이 바뀔 때면 바람이 붑니다. 소설도 지나고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요즘 어김없이 바람이 붑니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훈풍 같던 바람이 차갑게 돌아선 연인처럼 냉랭한 기운을 귓가로 보냅니다. 농가 쪽으로 차를 몰고 왔는데 길가의 대나무 숲이 일제히 한쪽으로 몰리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놀이 기구 타는 애들처럼 한쪽으로 쏠리자 아우성을 지르는 소리가 차 안으로 전해집니다. 탱자나무 가지에 탱글탱글 달려있는 아이들 주먹만 한 탱자는 대나무가 흔들릴 때 내는 소리 때문인지, 대나무 잎의 짙은 초록 때문인지 더 샛노래졌습니다. 이 바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얼마 전 007 시리즈의 원조 `제임스 본드`숀 코너리가 사망했습니다. 영화 속의 `제임스 본드`는 항상 자신의 이름을 밝힐 때면 "본드, 제임스 본드"하며 무심한 듯 거만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영국 첩보국의 스파이로 등장합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과 말끔한 슈트 차림에 최신형 자동차를 타는, 그의 캐릭터는 스파이 영화의 전형이 되었고 아류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향년 90세의 나이에 세상을 뜬 `숀 코너리`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이루어진 GBR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영국`이라고 말할 때는 위 네 곳을 하나로 보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합쳐서 부를 때는 GBR, UK이라고 부르고 국기도 유니온 잭을 쓰기도 하지만 각각의 자치국으로 불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월드컵 때는 네 나라가 독립적으로 출전합니다. 외교적으론 하나의 나라지만 내부적으론 자신들 문화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특히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오랜 전쟁을 치렀고 그 긴 기간의 대립은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스코틀랜드에는 백파이프, 스카치위스키, 타르탄 킬트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골프의 고향인 `세인트 앤드류스 링스 코스`가 있습니다. `골프의 성지`인 스코틀랜드 링스 코스에서는 가장 오래된 골프대회 `THE OPEN`이 열립니다. 올해 149회 디 오픈 챔피언쉽 대회는 코로나 19로 인해 내년으로 연기되었지만 해마다 명 승부가 펼쳐졌습니다. 특히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날 골프클럽`이 오래된 나무와 깔끔하게 정돈된 인공의 느낌이라면, `디 오픈`이 열리는 `세인트 앤드류스의 링스 코스`를 비롯한 스코틀랜드의 골프장은 해변을 끼고 펼쳐진 홀들이 바다와 맞닿기도 하고 오랜 시간 바람이 만들어 놓은 듯 원시적인 느낌을 줍니다. 스코틀랜드의 날씨는 하루에 사계절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햇볕이 쨍쨍하다가 갑자기 비가 내리고 그 비가 눈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북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여주는데, 스코틀랜드에 전해오는 골프에 관한 말 중에 ‘바람이 없으면 골프도 없다’는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스코틀랜드의 바람은 일상과 골프에서 늘 함께하는 것이 되었고 골프의 시작과 끝에는 늘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바람은 골프의 일부가 된 것 같습니다. 날씨는 단조로운 일상을 다채롭게 합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어야 하고 눈이 오면 두꺼운 외투를 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것들이 추억을 소환하고 떠올리게 합니다. 바람이 목 언저리를 스치면 남쪽 끝에 있는 링스 코스가 생각납니다. KLPGA 대회도 하면서 골퍼들에게 많이 알려진 골프 코스였는데 바람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갈대가 어우러진 홀마다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고 바람에 날린 갈대꽃은 지는 햇빛에 눈처럼 흩어지곤 했습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오리 떼는 군무를 펼치며 멋진 장면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바람은 아마추어 골퍼에겐 치명적인 실수를 유발하게 합니다. 매 샷마다 예측하기 힘들게 하고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자신의 샷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골프는 확신이 없을 때 실수를 합니다. 바람은 때로 그 확신을 여지없이 뭉개기도 합니다. 바람이 부는 날 눈치 빠른 캐디는 거리를 불러주고 마지막엔 꼭 그 말을 합니다. "바람 따로 계산하세요" 프로들은 바람이 부는 날 낮은 탄도의 샷을 합니다. 타이거 우즈도 스코틀랜드 링스 코스에서 티샷을 아이언으로 하고 굴려서 그린에 올려놓습니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 바람을 잠재우고 샷을 할 사람은 없습니다. 영화 `활`에서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마추어 골퍼에게 바람은 계산도 극복도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순간의 지혜를 발휘하게 하고 임기응변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바람 부는 날 골퍼는 바람 탓을 합니다. 책임을 전가하고 편해진다면 그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바람은 골퍼에겐 숙명입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바람이 없으면 골프도 없다’고 말하듯이 골퍼는 자연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됨을 만끽하는 것이 골프가 주는 축복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 바람은 편서풍을 타고 에든버러에서 왔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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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가을, 마스터스 감상.동물의 왕국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느긋하게 하품을 하며 어슬렁 거리며 걷는 것을 보았다.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이 느리지만 자신감 있어 보이는 수사자의 걸음. 그가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보다 동물 같은 느낌을 받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결국, 193cm의 큰 키로 오거스타를 휘젓고 다니던 더스틴 존슨은 2020 마스터스의 그린 재킷을 입었다.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가을에 개최되는 2020 마스터스 토너먼트 대회는 디펜딩 챔피언 타이거 우즈가 대회 2연패를 달성하고 투어 최다승을 경신할 것인지 이목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날 `아멘 코너`(11번 홀 ~ 13홀)인 12번 파 3홀에서 10타를 치면서 `양파`이상 세지 않는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셉튜플 보기(Septuple bogeyㆍ7 오버파)라는 새로운 골프 용어를 선물해 주는 것으로 마스터스를 마감해야 했다. 타이거 우즈의 `셉튜플 보기`는 골퍼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될 것 같다. 골프가 누구도 예외 없이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일대 사건이었고, 설령 그가 `골프 황제`라도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걸 잠시 동안 상기시켜주었다. 오직 마스터스에 대비해 모든 스케줄을 맞춰왔던 타이거에게는 치욕적인 순간일지 모른다. 골프의 가차 없음을, 야멸참을 느끼면서 그가 9번째 퍼팅한 공이 홀옆에 멈추는 상황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봐야했다. 갤러리가 없는 오거스타 내셔날은 화면 속에서도 아름다웠다. 봄날의 목련도 철쭉도 없었지만 선수들을 향해 열려있는 페어웨이와 트인 정경은 삭막해 보이는 링스 코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산속의 골프장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만의 정서 때문인지 모르지만 잘 정돈된 잔디나 유난히 하얀 벙커는 그린의 색상과 잘 어울렸다. 갤러리는 없어도 대회마다 티잉 그라운드를 병풍처럼 두르던 광고판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져서 그랬는지 하늘 높이 길게 자란 나무는 제각기 모습을 완연하게 보여주었다. 해가 비취는 곳에 가끔 길게 늘어난 나무 그늘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의식적으로 역광으로 촬영한 선수들의 스윙 모습은 큰 나무 저편의 햇빛 때문에 순간 눈이 부시기도 했다. 드론을 띄워서 내려다보는 홀은 숲 속의 산책로나 숨겨진 정원처럼 아늑해 보였다. 꽃과 나비가 없었고 알록달록 단풍은 보이지 않았지만 오거스타 내셔날이 미국의 전통을 또 한 페이지 만드는데 손색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번 마스터스는 3라운드에서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라운드가 끝났을 때 더스틴 존슨은 16언더파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2위 그룹은 애브라함 앤서, 임성재, 캐머런 스미스가 12언더파로 선두와는 4타 차이가 있었다. 2위 그룹을 형성한 선수 중에 세계랭킹 1위를 압박할만한 선수가 보이지 않았고 저스틴 토마스(-10), 존 람( -9), 로리 맥길로이( -8)가 뒤쫓고 있었으나 타수차가 있어 우려할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조심할 것은 선두를 유지하다 무너진 경험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뿐이었으리라. 한국인 최초로 마스터즈 챔피언 조에서 출발한 임성재는 표정이 밝아 보였고 자로 잰듯한 티샷을 보여 주었다. PGA 투어 우승이 없는 애브라함 앤서는 중압감 때문인지 자꾸 벙커로 공을 빠뜨렸고 스스로 무너지는듯한 인상을 주었다. 앞 조에서 플레이하는 캐머런 스미스가 트러블 상황에서 멋진 샷으로 그린에 올리고, 경사를 타고 홀 근처로 오는 공을 보면서 이변을 기대하기도 했다. 약간 조급했던 더스틴 존슨이 보기를 하던 상황에 임성재가 버디를 하면서 초반에 타수차를 좁혀갈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적어도 6번 홀에서 더스틴 존슨의 버디에 임성재의 짧은 1.2m의 파 퍼팅이 들어갔다면 그 기대는 이어졌을지도 몰랐다. 홀을 살짝 비켜간 그 홀의 보기는 승리를 염원하는 마음을 차갑게 식게 만들었다. 그리고 더스틴 존슨은 더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길게 멀리 치고 정교했으며, 칼처럼 예리하게 그린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터치로 유리 그린을 공략하면서 자신의 플레이에 더함도 덜함도 없이 묵묵히 지나갔다. 정상에 서서 부음하는 사자처럼 깊은 눈빛으로 홀을 바라보고 확신에 찬 몸짓으로 스윙을 하고 오거스타의 페어웨이를 지나갔다. 홀이 끝나는 시점에 광고를 내보려고 화면이 정지할 때가 있다. 굵은 소나무와 연못을 비추면서 컨트리풍의 노래가 잠시 나오다 광고로 넘어가곤 한다. 이 노래가 뭔지 궁금해 찾아봤는데 `오거스타의 테마송`이라고 한다. `목련꽃 피는 오솔길에 봄이 찾아오면 오거스타에 사람들이 모여드네 누가 일요일 오후에 그린재킷을 입을까요 누가 이 노래를 부르며 18번 홀 페어웨이를 걸을까요 오거스타 층층나무 소나무가 노래처럼 내게 말을 걸어오네 아 ~ 내가 사랑한 오거스타 아 ~ 내가 못 잊어 그리운 오거스타여 ` 오거스타와 마스터스는 미국의 자랑이고 전통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새로운 도전을 했고 또 새로운 한 페이지가 새겨졌다. 디펜딩 챔피언 타이거 우즈가 그린 재킷을 입혀주자 "타이거가 그린재킷을 입혀준 것은 굉장하고 놀라운 일이다. 이 옷을 입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더스틴 존슨이 말했다. 목련과 철쭉꽃 향기를 맡으며 수많은 갤러리의 환호성 속에 펼쳐졌던 마스터스 대회가 스크린 골프장의 화면처럼 시작하고 막을 내렸다. 내년에도 마스터스는 계속될 것이고 오거스타의 전설 역시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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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3pcs?’골프 연습장을 가면 스윙 연습을 하는 타석은 꽉 차 있어도 퍼팅 연습을 하는 그린 위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골프연습장의 그린은 주차장 한편이거나 구석진 곳에 있기도 한다. 내가 다니는 연습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산그늘이 만들어지는 한적한 곳에 조성되어있다. 여름 아침마다 새들의 지저귐이 부산스럽기도 했는데 계절이 바뀌면서 둥지를 떠났는지 한결 조용해졌다. 퍼팅 연습을 하면서 집중하고 있는데 ‘툭, 툭’하며 돌을 던지는 것 같기도 하고, 돌을 굴리는 듯한 소리가 숲에서 들려온다. 애써 외면하고 그린 스피드에 맞춰 리듬과 템포를 생각하며 연습에 몰입한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보니 같이 연습하던 아내가 안 보인다. 두리번거리며 산 쪽으로 걸음을 옮겨보는데 무언가 흡족한듯한 표정의 아내가 나타난다. 바람막이로 입고 온 네이비색 점퍼 주머니가 볼록하다. 내게 다가오더니 손을 내민다. "이것 좀 봐" 내민 손에는 매끈하고 단단한 알밤이 있다. 토실토실하고 골프공만 한 알밤이다. 좀 전에 들었던 돌던지는 소리는 밤 떨어진 소리였나 보다. 떨어진 밤이 낙엽 사이에 있어서 주워왔단다. 매끈하고 반짝거리는 알밤을 발견하면 새 공을 주운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고 만족해한다. 골프공은 골퍼에게 중요한 장비다. 프로 골퍼들의 장비는 협찬사와 계약을 통해서 지원을 받는다. 유명선수들이 사용하는 상품은 홍보효과가 크기 때문에 거액의 계약이 성사되기도 한다. 많은 장비를 사용하는 골프에서도 선수들이 특별히 계약에 신경을 쓰는 곳이 있는데 퍼터와 골프공이라고 한다. 다른 장비는 바꿔도 별 문제가 없지만 퍼터와 공은 골퍼들이 좀처럼 잘 바꾸지 않는다. 드라이버나 아이언은 브랜드를 바꿔가며 연습해볼 수도 있겠지만 골프공은 브랜드를 바꿔서 연습하기엔 어려운 현실적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골프공을 바꾸지 못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클럽 결정보다 골프공은 한 번 선택하면 거의 변화를 주지 않는 것 같다. 오랫동안 자신이 사용하던 골프공을 바꾼 선수가 있는데 미국 프로골프 (PGA) 선수 리키 파울러가 그 주인공이다. 라이더컵에 출전했던 리키 파울러는 더스틴 존슨과 한 조로 포섬 매치에 나가게 되었고 자신이 평소 사용하던 골프공이 아닌 더스틴 존슨의 공으로 경기를 하게 되었다. 라이더컵이 끝나고 리키 파울러는 골프공의 스폰서를 바꿨다. 모든 장비를 다 바꾼 선수가 있다. 미국 여자 프로골프(LPGA)에서 활약하는 리디아 고는 한때 `천재`소리를 들었던 골퍼였다. 어린 나이에 세계 1위를 하기도 했고 골프를 너무 쉽게 치면서 얄미울 정도로 퍼팅도 잘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도 그녀의 성장을 멈추게 할 것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녀가 모든 것을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을 때 적어도 퍼터와 골프공은 그대로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바꾸고 성공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바꾼 그녀의 도전이 진행형이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연습장에서 사용하는 골프공은 2 PCS볼이다. 2 PCS 골프공은 고무 성분으로 된 코어와 우레탄으로 만들어진 외피로 구성돼있다. 이 코어와 외피 사이에 한 겹을 더 싸게 되면 3 PCS가 된다. 이처럼 4 PCS, 5 PCS도 만들어진다. 2 PCS는 만들기 쉽기 때문에 가격이 싸고 탄성이 좋아서 멀리 간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제어하기 힘들다. 섬세하게 컨트롤해야 한다면 3 PCS이상의 볼을 사용해야 한다. 3 PCS이상은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다. 보기 플레이어 수준에 이른 골퍼라면 자신에게 맞는 골프공을 찾아봐야 한다. 골프공의 특질을 파악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퍼팅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일정한 리듬에 맞춰서 스트로크 연습을 해보면 공의 특징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2 PCS와 3 PCS의 구분은 공이 맞는 순간 손바닥에 전달된다. 그리고 굴러가는 공의 속도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적어도 하루 30분 이상 일정한 연습을 해야 한다. 지루하지만 퍼팅 연습은 집중력에 도움을 준다. 골프를 처음 시작할 때 미국에서는 퍼팅을 먼저 가르친다는 얘길 들었다. 7번 아이언을 들고 시작하는 우리로선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 미국과 우리나라의 환경을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필드를 나가기 위해 연습장에서 연습과 레슨을 받지만, 필드에서 시간의 제약 없이 골프를 시작하는 미국의 경우에는 굴리든지 띄우든지 앞으로 가면 될 터이고, 그린에 도달해서 홀을 마치기 위해선 퍼팅을 할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퍼팅을 먼저 가르치는 미국식 교육방법은 스스로 마무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골프는 공이 홀에 들어가야 끝나기 때문이다. 집으로 와서 주워온 밤을 까기 시작했다. 밤은 단단한 외피인 겉껍질을 벗겨내자 살에 달라붙은 속껍질이 나왔다. 속껍질을 벗겨내야 밤 맛을 볼 수 있었다. 밤은 3 PC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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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에서 가끔 그분(?)이 오시는날.골프 중계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납니다. 골프 용어도 겨우 외우기 시작할 때 아나운서나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 많은 선수의 이름은 도저히 외울 엄두도 나지 않았죠. 겨우 타이거 우즈나 필 미컬슨 정도 기억하는 수준이었으니까요. 그건 축구나 야구의 유명선수의 이름을 외는 정도의 상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쉐도우 크릭 골프 코스에서 열린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 대회를 티브이를 통해 아내와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작년 이맘때 제주도에서 열린 CJ 나인브리지 대회는 갤러리로 참관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필 미컬슨, 저스틴 토마스를 응원하며 따라다녔습니다. 축구나 야구장의 관중은 좌석표를 받지만 골프는 입장권만 구매합니다. 어디든 다닐 수 있고(선수나 주최 측의 사람들이 있는 공간은 줄을 쳐서 제한합니다) 어떤 선수를 쫓아다니든 자유입니다. 골프의 관중은 '갤러리'란 표현을 씁니다. 흔히 전시회에 온 사람들이 벽면을 따라 전시된 작품을 보기 위해 줄지어선 모습과 카트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진 관중의 모습이 닮아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올해부터는 코로나 19 때문에 갤러리 없는 골프 중계를 봅니다. 수많은 갤러리에 싸여서 경기하던 선수 입장에서 좀 서운할지 모릅니다. 휑하니 뚫린 홀을 중계방송으로 볼 때 처음엔 어색했지만 오히려 골프장의 한적한 풍경이 깔끔하게 들어와 더 좋기도 했습니다. 중계방송을 오래 보다 보면 별별 내용도 알게 되고 골프에서 발생하는 애매한 상황도 해설자의 설명으로 정리되기도 합니다. 같이 중계를 보는 사람과 공감하기도, 비슷한 사례를 얘기하며 연대감을 갖기도 합니다. PGA 중계를 유독 좋아하는 아내는 뒷모습만으로도 선수의 이름을 알아맞힙니다. 선수의 스윙이나 걸음걸이를 보고 선수의 컨디션까지 가늠할 정도로 예리한 눈을 가졌습니다. 3 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던 러셀 헨리의 스윙을 보더니, 아마추어 같다고 다른 선수에 비해 견고하지 못한 헐렁한 스윙이라고 말합니다. 뒤이어 해설자는 스윙 코치 없이 혼자서 연습한다고 일러줍니다. 최종 라운드에서 러셀 헨리는 티렐 해튼과 함께 공동 3위로 마감했습니다. 러셀 헨리 앞조에 있던 제이슨 코크랙과 젠더 셔플리는 타수를 줄이면서 우승 경쟁을 했습니다. 두 선수는 매치 플레이하듯이 긴장감 있는 경기를 했고 결국 우승컵은 제이슨 코크랙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의 우승은 8년의 시간과 233번째 도전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얼마 전 끝난 `오텍 캐리어 챔피언십 대회`에서 안나린 선수는 2위와 10 차이로 마지막 라운드를 시작했고 별 이변 없이 우승했습니다. 일요일에 끝난 마지막 메이저대회 `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김효주 선수는 10타 차이로 앞선 상황에서 시작했고 오버파를 기록했지만 이변은 없었습니다.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 스포츠에서 이런 경우는 좀 김이 빠질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스포츠 경기를 즐기는 이유 중 하나는 결과를 모르기 때문이고 예측할 수 없는 의외성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나린 선수나 김효주 선수는 마치 특혜 받은 선수처럼 경기를 했습니다. 다른 조건에서 따로 기록한 스코어 카드를 제출한 것처럼 말입니다. 실력의 격차가 있기에 순위가 결정됩니다. 하지만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선수끼리의 경쟁에서 그 차이는 미미할 것입니다. 그 날의 컨디션과 운도 작용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안나린 선수나 김효주 선수가 각각 우승한 대회에서 3라운드까지 보여준 실력은 같이 경기하는 다른 선수들을 무색하게 했습니다. 마침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것처럼 자신의 플레이를 했고 편하게 라운드를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만, 골프에서 가끔 나온다는 그분이(?) 오신다는 날 이 아닐까요. 아마추어들 사이에서 가끔 그분이(?) 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에 최고의 스코어를 기록했다고 야비다리 치면서 자랑을 합니다. 골프를 치다 보면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구력이 오래된 사람일수록 경험치도 많은 것 같습니다. 골프는 우연성과 운도 적당히 따라줘야 좋은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는데 그런 날이 그분이(?) 오시기 좋은 날입니다. OB선상으로 날아간 공도 나무를 맞거나 도로를 타고 치기 좋은 곳에 굴러가 있기도 합니다. 인도 속담에 나오는 ‘잘못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는 이럴 때 쓰는 표현 같습니다. 곁에서 보다 보면, 불던 바람도 멈추는 것 같고 탑핑으로 잘못한 어프로치 샷도 깃대를 맞고 홀 옆에 서있습니다. 산천초목이 도와주고 동반자들까지 실수하며 편하게 치도록 멍석을 깔아줍니다. 물론 본인의 샷이 잘되는 날이겠지만 세상의 모든 기운이 그를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골프를 치는 사람만 경험하는 영험한 순간입니다. 구력이나 실력이 얕을수록 짧게 왔다 가고 수준이 올라갈수록 더 길고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8년의 긴 시간 끝에 우승한 제이슨 코크랙 선수나 안나린, 김효주 선수에게도 골프의 그분이(?) 왔는지 모릅니다. 김효주 선수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이 코스에서 라운드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써 내려간 기록을 음미하고 싶은 듯합니다. 골프를 즐기는 많은 분들이 올해를 마무리하기 전, 그분(?)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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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동반자, 필드의 동반자.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문명을 일군 바빌론의 사람들은 하늘에 저수지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을 지키는 야훼의 노여움이 극에 달하면 저수지 수문을 열어 비를 쏟는다고 믿었답니다. 일종의 신의 경고인 셈이죠. 옛사람들의 하늘 숭배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늘 저수지에도 물고기가 살고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하늘 저수지의 물고기가 내려와 바다로 간 건 아닐까요? 어쩌면 사람들이 자는 사이에 비와 함께 내려와 냇가를 지나 바다로 갔는지도 모릅니다. 크게 자란 참고래는 오래전 내려와 깊은 바닷속에서 몸을 숨기고 지금까지 지냈을 겁니다. 오랜 기간 바닷속에서 숨을 참고 있다가 한 번씩 숨쉬기 위해 그 큰 몸집을 선보이기도 하지요. 분수쇼를 보이며 물 위로 뛰는 커다란 고래를 상상하다 보면 혹시 하늘 저수지로 가고 싶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연습장에서 공을 치다 보면 하늘 높은 곳을 나는 비행기를 보곤 합니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는 햇빛을 받아 고래처럼 허연 뱃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뱃살을 보다 내가 친 공을 놓치기도 합니다. 골프는 혼자 하는 운동입니다. 자신이 쳐서 날린 공이 있는 곳으로 가서 또 치고 쳐서 궁극적으로 그린에 있는 작은 홀에 넣어야 끝나는 운동입니다. 골프를 하지 않던 시절 티브이 화면으로 접하던 골프는, 너무 무료하고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공을 구멍에 넣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참 한심해 보였습니다. 축구나 핸드볼처럼 골키퍼가 있어서 상대를 속이거나 허점을 파고들어 골을 넣는 것도 아닌데 즐거울 까닭이 없어 보였죠. 그런데 주변의 권유로 시작한 골프는 만만한 게 아니었습니다. 정지된 공을 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되고 그리고 이 운동이 재밌다는 것을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중독처럼 빠져들었고 나는 이처럼 재밌는 운동을 함께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이 즐거움을 나만 간직하기엔 감동이 너무 크고 깊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영화나 책을 읽고 난 후 느끼는 감동을 혼자 주체하지 못하고 친구에게 떠들며 권하던 것처럼 말이죠. 제일 먼저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반응이 시큰둥했던 것 같습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내를 보면서 어떻게 골프에 입문시켜 볼지 고민하게 됩니다. 아내는 태생적으로 운동하고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같이 살아오면서 운동은 산책을 제외하곤 거의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아마 아내는 선천적으로 땀 흘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딘가 돌아다니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많은 시간 동안 책을 읽거나 가끔 뜨개질을 하는 게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아내를 골프에 입문시키기 위해 나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치밀한 계획은 아니지만 주변의 조력자가 있어야 조금은 더 수월할 것 같아서 형님 내외의 도움도 받습니다. 연습장 프로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즐겁고 재미있게 해달라고 부탁도 합니다. 형님 내외 식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운을 떼고 골프의 재미와 묘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이 먹을수록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우니, 부부가 함께할 운동을 한다면, 즐겁고 행복한 노후의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마무리로 설득 아닌 설득을 해 봅니다. 그리하여 연습장으로 함께 가는 것 까지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립 잡는 법부터 어드레스를 배우고 하나씩 배워갑니다. 퇴근 후에 들러서 연습하고 집으로 오는 것으로 일정을 맞춰 봅니다. 몇 주만 지나면 내가 그랬듯이 골프의 매력에 금방 빠질 것이고 빠르면 한 달 후에 라운드를 나갈 계획까지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를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는 이틀 가더니 그 뒤로는 재미없다고 다시 자신이 늘 있던 곳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달팽이가 집을 찾아 들어가듯 은둔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나는 참 막막했습니다. 모든 강요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나의 기준일 뿐 상대의 입장은 다를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운동도 골프도 싫어하는 아내를 움직일 방법 말입니다. 그날 밤 나는 아내와 싸우지 않았습니다. 속으론 화도 나고 일 년 치로 준 레슨비도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웃으며 말했습니다. “골프 재미없지? 근데 골프장 가려면 연습을 해야지...” “왜? 그냥 치면 안돼” “그냥 친다고?” 순간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이었습니다. 골프는 그냥 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걸으면 되는 것이었고 좀 느리게 가면 될 일이었습니다. 이제 시작이니 옆에서 좀 도와주면 될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주 주말에 퍼블릭 코스를 예약하고 그때부터 필드로 갔습니다. 그립만 잡고 공을 맞추기 급급했던 아내는 필드에서 처음으로 공을 띄웠습니다. 대부분 굴러다니기 일쑤였고 어쩌다 맞기도 했지만, 모든 샷은 '굿샷'이었습니다. 나는 연신 굿샷을 외치며 아내를 독려했었습니다. 후일 어느 날엔가 아내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나처럼 준비 안 된 골퍼는 못 봤어 “ 나는 골프를 어떤 의식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야 내보이는 상품이나 작품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존심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골프는 걸으면서 코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넌 왜 이리 좁은 거니?” “넌 벙커가 참 많구나?” “넌 정말 아름다운 홀이구나” 그리고 동기부여 역시 코스를 극복하는 재미에서 나옵니다. 초보 때 못 넘기던 해저드를 몇 년 뒤 가서는 아이언으로 넘기기도 합니다. 원하던 곳에 떨어진 공을 보면 그동안 흘린 땀이 자랑스럽고 연습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하기도 합니다. 골프 코스에서 상대는 코스 그 자체입니다. 동반자는 나와 함께 그 코스를 공략하는 아군이기도 하고 지혜를 빌려주는 선지자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동반자와 서로를 이기기 위해 게임을 하면서 승부에 빠지기도 하지만 진정한 골프의 묘미는 함께 하는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미술가 중에는 동반자를 통해 평생의 역작을 완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네의 사랑이었던 카미유, 모딜리아니의 잔느 에뷔테른, 앤드류 와이어스의 헬가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동반자를 통해 영감을 얻고 자신의 예술혼을 펼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골프는 홀로 하며 앞으로 전진하는 운동입니다. 하지만 혼자 갈 수 없고 동반자와 보조를 맞추며 함께 가는 운동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 나와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자신을 잃고 살아온 아내는 남은 시간도 나와 함께할 운명의 동반자입니다. 그런 아내와 흰 구름과 파란 하늘 사이로 오랫동안 서있는 팽나무를 곁에 두고, 티샷을 날리며 서로를 보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이럴 때 골프는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인생의 동반자를 필드의 동반자로 만나서 부담 없이 떠들고 즐거워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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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골프장의 전설’홀을 시작할 때 평평하게 잘 단장된 곳에서 티샷을 하게 되는데 이곳을 티잉 그라운드라고 한다. 예전에 골프를 배운 분들은 이곳을 티 박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티가 개발되기 전에는 바닥에 모래를 깔고 공을 올려놓은 다음 티샷을 했다고 하는데 모래를 담아둔 박스가 비치된 이곳을 티박스라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 골프장은 대부분 산악 지형에 조성돼 고저차가 심하다. 그래서 티잉 그라운드에서 페어 웨이를 내려다보고 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골프장은 마치 제단처럼 잘 정돈된 모양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가장 먼 거리부터 블랙, 블루, 화이트, 골드, 레드라는 색깔로 분류되는 티잉 그라운드는 골프가 `거리의 게임`이기 때문에 치는 곳에 따라서 핸디캡이 적용된다고 보면 된다. 티잉 그라운드 간 거리는 보통 20 ~30m가량 차이가 나는데 남성 프로선수는 블랙, 여성 프로 선수는 화이트를 사용한다. 아마추어 골퍼들은 주로 남성은 화이트, 여성은 레드를 사용한다.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210m 미만인 경우는 대체적으로 화이트를 사용해야 한다. 블루에서 라운드를 할 정도면 드라이버 거리가 220~230m 정도 나가야 하고 250m 이상 나간다면 블랙도 가능하다고 레슨프로들은 말한다. 휴일에 골프장에서 여유를 즐기며 라운드를 하기란 쉽지 않다. 골프장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많은 내장객과 줄지어 서있는 카트를 보면 다음 목적지를 향해 짐을 싸는 패키지 여행객처럼 마음이 부산하고 조급해진다. 거기에 캐디의 빠른 말투나 서두름이 감지되면 나도 모르게 쫓기듯 홀을 지나가곤 한다. 왠지 지나온 홀에 뭔가 빠뜨린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그것은 스코어를 적을 때 전해지는 아쉬움 때문일 거다. 지난 주말에 다녀온 골프장은 방문객이 많아서 많이 기다리게 되었다. 파3 홀에 이르면 기다리는 카트가 ‘사회적 거리 두기’만큼 떨어져서 드문드문 서있다. 우리 앞에서 진행하는 팀은 블루티를 사용해서 아마추어 고수인가 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지켜보던 친구가 무료함을 달래려고 골프 이야기를 풀었다. ( 한 번은 골프를 치는데 앞팀의 진행 속도가 좀 느린 것 같아서 뒤에서 자연스레 보게 되더라고, 그런데 보통은 비기너가 끼어있다든지 슬로 플레이어가 있으면 늦어지잖아. 이 팀은 그런 사람도 없이 아주 신중하게 플레이를 하더라고. 요즘이야 준비된 사람이 먼저 플레이를 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원구선타`(멀리 있는 사람이 먼저 친다)를 철저히 지키던 시절이니까 세컨드 샷도 정확히 지켜서 치면서 신중하게 플레이하는 것이 느껴지는 거야. 하물며 그린에서 플레이는 거의 컨시드가 없이 진행하고 있으니 아마 큰 내기가 걸렸나 보다 하고 우리도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했지. 그리고 전반전이 끝나고 그늘집에서 앞팀 캐디에게 물어보라고 했지. “도대체 얼마나 큰 내기를 하는 거야?” 그런데 내기를 안 한다는 거야. “도대체 뭔 말???”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형제간이라는 거였어. “???” 더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그리고는 “이 번에 진 사람이 어머니 모셔야 하나 봐. 마누라들이 오죽 응원하겠어. 서로 한 마디도 안 해” ) 형제간 사이가 좋지 못한 경우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거기엔 종교나 정치도 포함되고 경제적 문제나 개인감정도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아는 선배 집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선배는 장남으로 사회적으로 성공도 했고 주변의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말 못 할 고민이 있었는데 형제간의 불화로 동기간에 서로 만나지도 않고 거의 남처럼 지낸다고 한다. 부모님이 계신다면 구심점이 있어서 해결할 실마리라도 찾아보기도 하겠지만 두 분 다 돌아가셔서 명절 때도 만날 일이 없이 지낸다는 거였다. 명절 때야 각자 자기 가족과 보내면 되겠지만 문제는 부모님 제삿날이었다. 장남인 선배는 제사 준비를 하고 동생들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몇 년째 나타나질 않았다. 홀로 제사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께 면목도 없어서 늘 걱정이었다. 적어도 제사 때만이라도 동생들과 함께 부모님 영전에 절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고민 고민하며 시름에 빠져 있는데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다행히 공통점이 있었는데 형제들 모두 골프를 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해 부모님 제사 때는 골프장을 예약하고 동생들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그 해 부모님 제사는 골프장에서 동생들과 함께 보내면서 마쳤다고 한다. 그 후, 부모님 제사 때는 골프장에서 형제끼리 어울린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골프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는 ‘천일 야화’처럼 무궁무진하다. 슬픈 얘기도 기쁜 얘기도 있고 코미디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도 야한(?) 농담도 많은 것 같다. 몇 가지 기억해 두었다 카트에서나 그늘집에서 풀어놓는다면 동반자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