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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사리를 아시나요?

기사입력 2020.06.1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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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기운을 이끌고 장엄하게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

    작약데이지노란 코스모스낮달맞이매발톱방울꽃으로 환한 화단과

    황토 한옥을 은은히 비쳐주며

    오늘 하루의 삶도 아름답고 감사했노라고 속삭이는 노을.

    한 아빠는 집 아래 밀밭으로 익어가는 밀을 베러갑니다.

    그리고 초록빛 기운이 감도는 몇 주먹의 밀대를 쓱쓱 베어옵니다.

    또 한 아빠는 잔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피웁니다.

    나뭇가지에 불이 붙어 작게 타오를 즈음 아이들은 너도 나도 밀대를 손에 쥐고 밀이삭을 불에 태웁니다.

     

    밀사리를 아시나요?

     

    사리는 불살라 먹는다는 뜻이라죠.

     

    5월 넷째주 주말에 구례 사는 여러 가족들이 모여 마당에서 밀사리 잔치를 벌였어요노릇하게 익어가는 밀을 조금 베어 내어 언니오빠동생엄마아빠 할 것 없이 불에다가 갓 베어낸 밀을 꼬실라 먹는데...

     

    ~~ 그 맛 참!

     

    달큰하고 고소하고 쫀득쫀득하고 불에 그슬리니 구수한 맛까지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어릴 적 저희 동네는 밀 농사를 짓지 않아 밀사리를 못해 보고(보리 사리는 해 본 것 같은데... 어떤 애기 엄마는 쌀사리만 해 봤다 함이제야 요걸 해보는데이야~~ 정말 맛있네요어른도 아이들도 손바닥이 까매지도록서로의 얼굴에 숯검댕이를 묻히고 깔깔 웃으며 구운 밀이삭을 비벼 먹었어요.

     

    밀밭에는 바람타고 날아온 씨앗이 피어난 빠알간 꽃양귀비가 참 이쁜거 있죠큰아이랑 몇 몇 여자아이들이 옆마을 우물가에서 따온 빠알간 앵두도 참 예뻤어요마치 여기에 옹기종기 모인 우리들처럼요불에 노릇노릇 구워지는 밀이삭과 시커멓게 그을려진 손바닥과 얼굴들...

     

    엄마가 밀이삭을 비벼주는 동안 쪼그리고 앉아 유심히 바라보고진득허니 기다리다가 한 알한 알 맛나게 집어먹는 아이.

     

    모두 아름답고 정겨운 풍경입니다.

     

    그리고집 안에서는 엄마와 이모가 우리밀로 빵을 만들고 굽는 시간.

     

    엄마는 치아바타(납작한 슬리퍼라는 뜻)라는 이탈리아 빵을 만들고이모는 당근과 계피가 들어간 케잌을 만들었지요.

     

    빵을 다 구워 구례에서 만든 산양치즈와 역시 구례총각이 만든 수제햄그리고 별이 엄마가 만들어온 울릉도 부지깽이 페스토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니 얼마나 맛나던지... 이모가 만든 우리밀 케잌도 담백하고 고소하니 참 맛났어요.

     

    밀사리에서 빵과 케잌까지우리 아이들우리 밀의 맛남을 오감으로 느꼈겠죠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아이들과 함께 빵 만드는 것도 해 봤을텐데요대신에 엄마들에게 치아바타 빵과 케잌 만드는 법을 알려 주었어요.

     

    구례는 원주와 함께 밀을 많이 생산해요그치만 소비가 적다 보니 자꾸만 밀 생산량을 줄여야 해요저는 구례댁으로서 구례 사는 엄마들이 집집마다 빵을 굽고술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강 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 목월의 나그네

     

    제가 사는 하사마을은 굽이굽이 섬진강이 흐르고들판엔 초겨울부터 6월까지 밀이 자라고해질녘엔 서산으로 넘어가는 노을이 참 예쁘답니다. ‘나그네시가 노래하듯 이렇게 이쁜 마을에서이렇게 고운 고장에서 집집마다 빵을 굽고술 익는 내음이 난다면 아마 밀향기 그윽한 마을이 될 거예요.

     

    다음엔 엄마들이 모여 술도 한 번 담가 보기로 했어요술이 잘 익게 되면 그 때 님도 살짜기 부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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