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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가시나무를 보낸다

기사입력 2023.12.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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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밤이면 한기를 몰고 온 바람이 어둠을 관할하고 낮이면 빛이 그리운 시기다. 며칠 전 가게에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켜면서 축복이 불빛처럼 환하게 내려달라고 잠시 빌었다. 추운 12월에 예수의 탄생일이 있다는 것은 믿음을 떠나서 어떤 위안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는 어떤 신에 대한 특별한 믿음의 갈망은 없지만 특별히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탄생의 축복을 기리기도 하고 사월 초파일이면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기도 했던 것 같다.


    지난 주만 하더라도 봄날 같은 날씨였다. 이러다 곧 여름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기상 이변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해 한겨울에도 낮에는 쉽게 영상으로 올랐다. 하지만 요 며칠간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면서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다니던 학생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오늘은 눈발이 간간이 날리는 거리를 목도리를 칭칭 맨 남녀가 어깨를 움츠리고 지나간다. 얼마 전까지 따뜻한 봄날을 즐기며 어슬렁거리던 길고양이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순천만 정원 부근에는 주차장 울타리로 식재된 호랑가시나무가 있다. 잎에 가시를 단 이 나무는 빨간 열매로 인해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꽃처럼 벽이나 천장에 장식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 포인세티아의 붉음과 호랑가시나무의 빨간 열매로 꾸며진 집을 보면 축복과 은총이 가득할 거란 생각을 하곤 한다. 가끔 그 주차장 부근을 지나다 호랑가시나무를 보게 된다. 12월에는 빨간 열매가 사랑의 열매처럼 더 붉어진 것 같다. 


    봄이 오면 자주 인용하는 문장 중에 강남일지춘 ( 江南一枝春 )이 있다.`강남에서 매화나무 가지 하나에 봄을 담아 보낸다`는 이 글귀에는 물질로 담지 못할 인정의 가치가 있다. 영하의 추운 날이지만 호랑가시나무를 내가 아는 사람들께 전하고 싶어졌다. 따뜻한 말에 마음을 전하고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라 자성의 마음도 들었다. 혹여 호랑가시나무를 장식하여 그분의 탄생을 축하하면 면죄부를 줄지도 모를 거란 막연한 기대도 없지 않았으리라. 


    친구에게 매화가지를 보내는 사람의 심정으로, 빨간 열매에 사랑을 담고 가시 달린 잎에는 그분의 축복과 은총을 빌면서 호랑가시나무를 꺾는다.

    ` 호랑가시나무를 그대에게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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